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우리나라를 향한 경제 보복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자국에서도 나오는 우려 목소리에 아랑곳 않는 모습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국내 자산 매각 작업이 본격화할 조짐이 보이자 손해배상 청구 등 보복 조치를 검토하고 나섰습니다. 또 일본은 국가안보상 우호 국가(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내달 22일 관련 법안이 발효되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뿐 아니라 1100여 개 품목에 달하는 전략물자를 일본으로 수입할 때 일일이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일본이 모호한 국가 안보상 우려를 핑계로 세계무역 원칙을 뒤흔들고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NYT는 15일(현지시간) 아베 총리가 지난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자유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는 글로벌 평화와 번영의 근간”이라며 자유무역 질서를 강력히 옹호하더니 불과 이틀 만에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아베의 이런 행보는 무역을 무기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식을 답습한 것으로 비쳐친다고도 언급했죠.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는 “일본 수출규제는 외교 보복을 위해 특정산업에 대한 일방적 제재를 정당화시키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기고문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일본 언론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교도통신은 17일 논설을 통해 한일관계가 전후 최악인 상황이고,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일본 측이 자세를 굽히지 않으면 의미 있는 합의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은 기고문을 통해 "일본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짚었습니다. 이어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조치를 통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고 싶은지, 그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죠.
오락가락하는 일본의 해명은 역으로 사실상 수출규제에 명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본은 수출규제를 정당화하려 처음에는 징용 문제를 언급하더니 대북제재까지 끌어들였습니다. ‘한국이 핵무기로 사용되는 불화수소를 북한에 밀수출했다’는 논리를 편 것인데요. 오히려 일본이 북한에 해당 전략물자를 밀수출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망신을 당했습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11일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 자료를 인용, 지난 1996년부터 2003년까지 30건이 넘는 대북 밀수출 사건이 적발된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일본 측은 수출규제 이유가 북한 밀반출은 아니라고 꼬리를 내렸습니다.
사실 아베 총리가 왜 이런 위험을 자초하는지는 명백합니다.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일본이 ‘전쟁가능한 국가’가 되도록 개헌하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입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교전권과 전력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를 개정하는 데 사활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아베 총리 지지율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극우성향 산케이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 외에는 주요 일본 언론 설문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요미우리신문 설문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각각 7%포인트 하락한 49%, 6%포인트 하락한 45%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산 불매운동에서 더 나아가 일본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이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일본 내 외국인관광객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4%로 중국인에 이어 2위에 달합니다. 반일감정이 당분간 지속될 경우 일본도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한국과 일본 국민들은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공들여 쌓아온 신뢰마저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의 무모한 질주를 막을 방법에 대한 우리 모두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