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의 상산고등학교가 앞으로 5년간 자율형사립고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전북도교육청이 요청한 상산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취소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산고는 "사필귀정"이라며 환영했지만 도교육청은 교육부의 결정을 "교육개혁의 퇴행"으로 못박고 '법적 대응'을 검토중이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2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북교육청의 사회통합전형 선발비율 지표는 재량권을 일탈 또는 남용한 것으로, 위법하고 평가 적정성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의 지정취소에 '부동의'한 것이다.
앞서 상산고는 도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점수(80점)에 0.39점 모자란 79.61점을 받아 지정 취소 결정을 받았다.
박 차관은 상산고의 사회통합전형 선발과 관련, 도교육청의 '실수'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박 차관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부칙상 구 자립형사립고(상산고)는 입학정원 20% 이상을 사회적배려자로 선발해야 한다는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면서 "교육부는 자립형사립고라도 사회통합전형을 확대하기를 권장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만 전북교육청은 실수인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몰라도 20% 비율이 일반고만 해당된다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사고인 상산고가 주의깊게 보지 않을 빌미를 준 셈인데, 2015~2019학년도 전북 고등학교 입학전형 기본계획에 따르면 군산중앙고와 남성고는 20%를 사회적배려자로 선발하도록 못박은 반면 상산고는 학교별로 결정한 비율을 적용한다고 명시해 3%만 승인해 5개년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도교육청은 이번 재지정평가에서 사회통합전형 선발 비율이 10%가 돼야 4점 만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상산고는 정원의 3%만 사회통합전형으로 선발해 2.4점이 감점됐다.
교육부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전북도교육청은 정부와 교육부를 싸잡아 비난했다.
정옥희 대변인은 "함께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시대정신과 보다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자 했던 그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이다"면서 "정부와 교육부는 더 이상 교육개혁이란 말을 담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퇴행적 결정"에 대해 향후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정 대변인은 그러나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 드릴 수 없는 상황이다"면서 "향후 법률적인 검토를 거친 후에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상산고는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육성과 사회발전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정진하겠다"며 교육부 결정에 환호했다.
박삼옥 교장은 국중학·이종훈 두 교감과 같이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아직 도교육청으로부터 정식 통보를 받지는 못했지만 부동의 결정은 당연한 결과다"면서 "부동의를 확신했는데,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가 이끌어낸 결과다"고 자사고 유지 당위성을 밝혔다. 그러면서 "사회통합전형 기준은 재량권 범위를 넘어서 남용이며, 이에 따라 교육부 결정은 사필귀정이다"고 말했다.
박 교장은 "김 교육감이 이번에는 사과를 하지 않겠나"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박 교장은 "국민의 교육에 대한 요구와 자사고 지정 목적을 온전히 감당해 실천하기 위해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고 잘 해온 점들을 계승해 나가는데 진력하겠다"고 밝혔다. 부족한 점과 관련해서는 "지역사회와, 지역 고교와 소통하면서 발전을 모색하는 방안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강계숙 상산고 학부모회 대표는 "대한민국의 정의와 법은 살아있고 교육도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고 기뻐했다.
설립자인 홍성대 이사장은 "상산고 아이들의 미래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장외에서는 부동의 결정에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상산고 자사고 폐지-일반고 전환 전북도민대책위'는 교육부 부동의를 규탄했다. 이들은 "상산고는 입학부터 성적 우수학생을 싹쓸이하는 특권을 누리고 연간 학비는 1천만원이 훨씬 넘는 귀족학교로, 가난한 학생은 꿈조차 꾸지 못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인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특권-귀족학교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촛불정부라 말하지 마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는 전북교육청에 교육부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을 권고했다. 이들은 "절차와 과정의 공정성, 형평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소통행정을 보여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정치권도 목소리를 담아냈다.
민주당 전북도당은 "교육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자사고가 설립목적과 달리 입시경쟁을 부추겨 고교 서열화를 조장하고 교육체제를 왜곡시키기에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지정취소를 결정한 전북교육청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육청과 상산고에 "법적공방은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고 전북교육의 발전과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협력하라"고 주문했다.
민주평화당 전북도당은 "자사고 폐지와 유지를 두고 교육계 뿐 아니라 정치권과 도민의 여론이 극심하게 분열됐다"며 "사법적 판단을 구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법적 공방(준비)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바른미래당 전북도당은 교육부의 결정에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교육청의 교육부를 상대로 하는 권한쟁의 신청 준비를 말렸다.
정운천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김 교육감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걱정스런 눈으로 지켜 본 일반 시민들도 긍정적인 분위기다. 전북출신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이종열 씨는 "상산고가 전북의 인재를 넘어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바람과 달리 법적 다툼은 계속될 전망이다.
상산고 학부모 3명은 지난 16일 김승환 교육감의 직권남용과 명예훼손 행위가 있었다면서 전북지방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자사고 폐지를 실현하기 위해 탈법과 인권침해, 명예훼손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 고발 이유다.
이들 학부모들은 교육부의 '부동의'에도 김 교육감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학교와 학부모회도 학부모 개인들의 행위여서 취하를 권고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도교육청도 교육부의 판단을 받아 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명백하다. 특히 김승환 교육감은 최근 가진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교육부장관이 동의해 주지 않으면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것이다"고 밝힌 바 있어 자사고 문제의 법정 비화 가능성은 높다.
전주=소인섭 기자 isso2002@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