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Mnet) ‘프로듀스X101’(프듀X)은 방영 당시보다 종영 후에 더 뜨거웠던 프로그램으로 기억될 것이다.
최종 데뷔 멤버를 가리는 문자 투표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나오면서다. 1~20위 연습생의 득표수가 7494.44의 배수로 분석된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실제로 1위 김요한의 득표수는 133만 4011표로 7494.44의 178배에 근접한다. 나머지 19명 연습생의 득표수도 이런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뿔난 팬들은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단체 행동에 나섰다. 위원회는 다음달 1일 ‘프듀X’ 제작진을 사기·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고발할 계획이며, 팬들을 상대로 고소인 동의서와 함께 유료 문자(건당 100원) 참여 내역, 탄원서 등을 수집해왔다.
초기엔 ‘공식입장 없음’으로 대응하던 엠넷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자체 조사로는 사실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31일 오전 CJ ENM 내 ‘프듀X’ 제작진 사무실에 수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 확보에 나섰다. 문자투표 데이터 보관업체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그룹 엑스원을 두고도 잡음이 일고 있다. 일부 팬들은 ‘활동 강행에 반대하는 엑스원 팬연합’을 꾸려 “진상 규명 없이 엑스원의 활동을 강행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반면 이들 연합이 엑스원 팬덤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와 팬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시청자 참여형 오디션에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불명예스럽다. 하지만 가장 나쁜 건 이 논란으로 드러난 아이돌 산업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꿈과 열정을 앞세워 인정에 호소하고도, 팬들의 합리적인 의심에는 입을 다물고 있던 제작진의 태도는 과연 본받을만한 어른의 모습인가. 자사 소속 제작진의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을 남의 일처럼 표현한 방송사의 ‘유체이탈’ 화법은 정당한가. ‘엑스원의 데뷔와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1~20위 연습생 소속사 대표들의 합의에는 당사자인 연습생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인가. 심지어 이 과정에서 특정 기획사의 대표가 다른 기획사 대표들에게 합의를 종용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해당 기사를 보고 ‘그럴 리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소년들의 목소리가 끼어들 틈은 없다. ‘당신의 소년(소녀)에게 투표하라’는 주문은 공허할 뿐이다.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프로듀스X101’은 배신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결말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