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소녀시대 멤버이자 배우 임윤아의 애칭은 ‘융프로디테’다. 아름다운 외모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아름다움의 신 아프로디테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2년 동안 임윤아는 ‘미소녀의 표준’으로 통했다. 아름다움이 미덕으로 여겨진 걸그룹의 세계에서, 그는 긴 시간 가장 아름다운 멤버로 칭송받아왔다. 무대 정중앙에서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음 짓는 건 대부분 그의 몫이었다.
임윤아가 영화 ‘엑시트’(이상근)에서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머리카락도 마구 헝클어진 모습을 보여주자, ‘망가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이 나온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임윤아는 한 번도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영화 ‘공조’에서 그는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백수가 돼 극의 웃음을 책임졌다. JTBC ‘효리네 민박’에서는 짧은 머리를 대충 묶고 집안을 돌보기에 바빴고, JTBC ‘아는 형님’에선 애교스러운 춤과 노래 뒤에 일명 ‘오동잎 댄스’를 덧붙여 보여줬다. 데뷔 초 소녀시대 멤버들이 임윤아에게 붙여준 별명은 ‘임초딩’이었다. 장난을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아름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첫 주연작 KBS1 ‘너는 내운명’의 장새벽을 비롯해 데뷔 초 그가 연기한 인물은 역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캔디렐라’나 사건과 사고를 몰고 다니는 ‘로코 여주’의 전형이 많았다. 걸그룹 멤버의 무해한 이미지가 작용한 탓일 게다. 하지만 임윤아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는 한편,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와 끊임없는 도전으로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뜨려왔다. ‘엑시트’에서 임윤아가 “이용남 이 개새끼”를 외치거나,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우는 장면이 하나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건 그 덕분이다. 그가 연기한 정의주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진다. 죽을힘을 다해 탈출하고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소녀시대 센터에서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임윤아 자신이 걸어온 길도 그랬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난달 22일 방송한 네이버 브이라이브 ‘배우왓수다’에서 MC 박경림은 ‘엑시트’ 정의주의 끈덕진 생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건물 사이를 뛰어 다니고, 벽에 매달리거나 벽을 기어오르는 정의주의 모습은 몸이 부수어져라 춤을 추던 ‘다시 만난 세계’의 윤아를 떠올리게 만든다. 정의주의 질주가 주는 쾌감은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넘어 임윤아라는 인물과 만나 더욱 짜릿해진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건 임윤아의 뜀박질도 마찬가지다. 한 때 꽃으로 여겨지던 그는 지금 바람처럼 상쾌하게 달리고 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