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이 악화하는 가운데 일본 경찰이 한국 국적의 절도 용의자를 언론까지 동원해 지명수배했다. 흉악범이 아닌 단순 절도 용의자 신상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혐한 감정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경시청은 지난 19일 김모(64)씨를 공개 수배했다. 김씨는 지난 13일 도쿄 나카노 구의 한 음식점에서 8만엔(약 91만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러나 체포 과정에서 부상당해 병원으로 옮겨졌고 지난 18일 입원 중 경찰관을 따돌리고 도망쳤다.
일본 경찰은 김씨가 도주한 지 하루 만에 언론을 통해 그의 신상을 공개했다. 일본 현지 신문과 방송에는 김씨 실명과 얼굴 사진이 그대로 보도됐다. 김씨가 도주하는 영상까지도 전파를 탔다. 이에 일각에서 일본 당국이 한일 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혐한 방송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화장품 DHC 자회사 ‘DHC TV’의 역사 왜곡과 비하 방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0일 국내 언론 보도로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샀다.
DHC TV의 방송에 출연한 한 패널은 “한국은 원래 금방 뜨거워지고 금방 식는 나라”라며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비하했다. 또 다른 패널은 “조센징들은 한문을 썼는데 한문을 문자화시키지 못해 일본에서 만든 교과서로 한글을 배포했다”며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시켜서 지금의 한글이 됐다”고 역사 왜곡 발언을 했다.
한국에서 DHC 제품 불매운동이 일자 지난 14일 DHC 측은 입장문을 내고 “상식 밖의 언론 봉쇄”라면서 “당사 뉴스 해설의 한일관계에 대한 보도는 사실에 기반한 정당한 비평으로 모두 자유로운 언론의 범위 안”이라고 기존의 논조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발뺌했다.
또 일본에 있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혐한 방송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에 거주 중인 한국인 작가 ‘다로리’(필명)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국이 없으면 정치가 안 되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한국을 비판하는 내용은 일본 방송의 단골 주제”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일본 방송을 보면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에 한국보다 일본이 더 관심이 많아 보일 정도” “혐한 방송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아예 TV를 틀지 않는다”는 등의 동조 의견이 잇따랐다.
일본 한 대학의 전직 교수 출신으로 현재는 유튜브 채널 ‘롯본기 김교수’를 운영하는 김손필씨는 이같이 혐한 방송과 도서가 범람하는 배경을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씨는 본인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일본 출판 시장에서는 한국을 자극적으로 폄하하고 비난할수록 베스트셀러가 된다”며 “대표적으로 미국 변호사 켄트 길버트는 혐한 도서로 100만부 넘게 팔았고 이를 바탕으로 방송이나 강연에도 출연 중”이라고 설명했다. 길버트는 DHC TV 패널 중 한 명으로 출연해 지난 15일 “DHC 한국 지사장이 멋대로 사과 해버렸다”고 발언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