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이번 생은 틀렸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인다. 그런데 최근 국회를 보면 정말 이번 국회는 틀린 것 같다. 아직 행정부에 대한 감시기능을 하는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 2020년도 정부예산안 처리라는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핵심임무 2가지가 남겨져 있지만 뒷전이다. 마치 ‘이번 국회는 틀렸으니 다음을 노리겠다’는 모습이다.
실제 국회에서 가장 바쁘다는 시기라는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시즌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회 의원회관에 밀집한 의원실 모습들은 과거와 사뭇 달랐다. 재선을 노리는 일부 의원실은 벌써부터 지역구 관리에 들어간 듯 의원실이 한산했다. 의원실 내부는 휘날리는 종이와 자료들로 지저분해야 정상이라는데 청소가 잘된 듯 깨끗하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잘못하면 맹탕 국감이 될 것 같다. 여러 의원실이 언론이 요구하는 자료들로 국감을 준비하는 모습”이라고 분위기를 전하며 “자료요구를 하려면 지금이 적기”라는 농담 같은 진담을 던지기도 했다. 공공연히 거론되는 ‘최악의 국회’라는 표현이 괜히 붙여진 건 아닌 듯하다.
오명은 단순히 말 뿐이 아니다. 통계로도 역대급이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20대 국회 제출법안들은 예·결산안 72개를 포함해 총 2만2531개다. 이 가운데 지난 3년 6개월여간 처리된 법안은 전체의 30.5%인 6867개가 전부다. 직전인 19대 국회가 1만7309건 중 5566건을 처리해 처리율 32.2%를 기록하며 ‘최악’이란 평가를 받았는데 더한 상황이다.
참고로 18대 국회의 법안처리율은 44.8%(1만3212건 발의, 5920건 통과), 17대는 50.28%(7135건 발의, 3589건 통과)를 기록했다. 사회적 필요성과 누군가의 고통이나 피해가 누적되고서야 법안이 발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해 자동폐기되는 땀과 눈물이 더욱 많아지게 되는 셈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쿠키뉴스와 조원씨앤아이가 전국 성인남겨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대 국회의 성과’에 관한 설문조사(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는 ±3.1%p)에서 응답자의 84.8%가 ‘잘 못했다’고 답했다. 특이한 점은 극단적인 답변을 잘 하지 않는 응답자들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매우 잘못했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의 52.7%에 달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럼에도 국회가 있는 여의도는 위기의식보다는 평화가 자리잡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필두로 보수정당들은 삭발과 투쟁을 이어가며 ‘조국’만 붙잡고 있다. 민생해결을 말하는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야당의 국회복귀를 촉구하면서도 뒤로는 ‘총선승리’, ‘재집권’을 강조하고 있다. 정의당조차 의석 추가확보를 위한 선거구개편에 온 신경이 쏠린 듯 조용하다.
이대로라면 정말 ‘이번 국회는 틀렸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번 생은 틀렸다’며 패배주의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다독일 때처럼 기대를 걸어야할까 반문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2020년 4월 15일 총선이 ‘심판의 날’이 되지 않길 바란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