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악몽 떠올라요”…돼지열병, 가격 안정세 ‘수성’ 가능할까

“구제역 악몽 떠올라요”…돼지열병, 가격 안정세 ‘수성’ 가능할까

[르포] 대형마트는 할인까지 하는데…시장 정육점·소매점 "도매가 높아 힘들다"

기사승인 2019-09-21 05:03:00

# 20일 오후 5시께 롯데마트 서울역점. 한 노부부가 1층 축산물 코너에서 돼지열병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이내 손에 쥐었던 삼겹살 400g 한 팩을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비슷한 시각 인근의 후암시장. 자동차들은 도로를 오가고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으나 정육점 앞은 유달리 한산했다. 시장 앞에서 고깃집 겸 정육점을 운영 중인 한 사장은 기자에게 "손님이 확실히 줄었다“며 "돼지고기 장사 공쳤다"고 난감해 했다.

돼지열병 발생 나흘째인 20일. 다행히 추가 발병은 없었지만, 대형마트·재래시장은 울상을 지으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모양새다. 만일 사태가 악화한다면 과거 구제역 사태처럼 도매가가 폭등하고, 소비심리가 얼어붙는 등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어서다. 일부 현장 소비자들도 아직까지 ‘돼지고기 섭취가 걱정된다’, ‘삼겹살 ’금겹살‘이 되는 것이 아니냐’ 등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돼지열병)은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다. 돼지열병의 인체 감염 사례 역시 아직 보고된 사례가 없다. 병에 감염된 돼지고기가 유통될 가능성도 극히 낮다. 그럼에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찜찜하긴 마찬가지다. 이날 대형마트에서 만난 이연희(가명·40)씨는 "전국적 확산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돼지고기가) 섭취가 신경 쓰인다“면서 ”평소 두 번 먹을 것을 한 번 정도로 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전과 같이 돼지열병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소비자도 존재했다. 정부에서 빠르게 방역대책에 나서고, 언론 등이 관련 홍보에 나선 영향이다. 매장 직원도 ”아직까지 돼지고기 판매량이 줄거나 하진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몇몇 소비자들은 정육코너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고, 고기를 고르는 손길에 신중을 기했다.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 등을 구입했다는 고객도 마주칠 수 있었다. 가격 상승이 염려되어 일명 ‘쟁기기’를 하는 고객도 목격됐다. 용산에서 거주 중이라는 한 50대의 주부는 “유통기한이 있어 많이 사 두진 못하고, 돼지고기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몇 개를 더 구입한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아직까지 돼지고기 가격의 상승폭은 눈에 띌 만큼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이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산 냉장 삼겹살 기준 평균 소매가는 100g에 2092원을 기록했다. 돼지열병 발병 전인 16일과 비교해 80원 가량 오른 정도다. 도매가격이 올랐더라도 대형마트 물량 비축분이 높아, 당장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은 것. 문제는 아직 치솟은 도매가가 떨어지지 않아 가격 안정세가 앞으로 지속할 것으로 장담하기 어렵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운영하는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현재 전국 주요 축산물 도매시장에서 거래된 돼지고기 평균 경매가는 ㎏당 6166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돼지열병 발병 전 도매가보다 약 30%가량 높은 가격이다. 

이같은 도매가가 지속된다면, 시장 정육점 등 소매점 등은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견딜 물량이 있는 대형마트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후암시장에서 30년간 정육점을 운영중이라는 정석환(가명·58)씨는 “대형마트는 비축분이 많아 오히려 지금 할인까지 하지 않느냐, 규모가 작은 소매점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면서 “도매가격이 오르면 우리는 대형마트와 달리 당장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이 정육점의 삼겹살·등심 등의 가격은 돼지열병 발병 전보다 3000원 가량 올랐다. 정 씨는 "과거 구제역 사태처럼 돼지열병이 확산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밖에 없다“면서 ”불황으로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데, 돼지열병까지 생기면서 우리는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희망적인 점은 아직까지 추가 발병 지역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돼지열병 발생에 따라 시행됐던 이동금지조치를 해제했다. 이에 따라 치솟았던 도매가가 내려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농식풉부는 지난 19일 입장자료를 통해 “이동중지조치가 해제됨에 따라, 도매시장에서 정상적인 돼지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며 "그동안 출하되지 못한 물량이 공급돼, 가격 역시 빠르게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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