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로 이모(56)씨가 특정된 가운데 용의자가 1명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지난 1986년부터 4년 7개월 동안 발생한 10건의 살인사건을 지칭한다.
22일 이 사건의 수사본부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주 내에 이씨에 대한 4차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수사에는 지난 2009년 여성 10명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연쇄 살인범 강호순이 자백을 끌어내도록 심리분석을 맡았던 프로파일러 3명이 투입된다.
일각에서는 이씨 말고도 용의자가 더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총 10건 중에서 3건의 사건 증거품에서만 이씨의 DNA가 나온 상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사건에서 발견된 6개의 증거품에서 나온 DNA가 이씨와 일치했다.
이씨가 용의자로 특정된 5,7,9차 사건과 1차(1986년 9월), 2차(1986년 10월) ,10차(1991년 4월) 사건의 패턴이 다소 다르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5,7,9차 사건은 희생자 손을 스타킹이나 블라우스 등으로 결박, 목이 졸리고 재갈을 물리는 등 범행 수법이 매우 유사했다. 그러나 1,2차 사건은 이 같은 수법이 발견되지 않았다. 1차 사건은 피해자 하의가 벗겨져 다리를 X자로 꺾인 채 발견됐으며 2차 사건은 흉기로 살해됐다. 6차와 10차 사건의 피해자는 각각 상의와 하의만 벗겨진 채 발견됐다.
10차 사건은 과거 일본 경찰수사과학연구소의 DNA 분석 결과, 9차 사건과 같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대답이 나오기도 했다. 최상규 전 국과수 유전자분석과장은 “당시 9, 10차 증거물에서 채취한 정액을 갖고 일본 경찰수사과학연구소에 분석을 직접 의뢰했는데 두 사건에서 나온 DNA가 같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22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과거 경찰도 이 같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화성연쇄살인사건을 크게 1,2,3,4,5,6,7,9차, 8차, 10차 3개로 구분해 3명의 범인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경찰은 8차와 10차를 모방범죄로 분류했다. 8차 사건은 발생 이듬해인 1989년 7월 윤모(당시 22세)씨가 검거되며 종결 처리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집요하게 취재하며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 기자’로도 언급된 박두호(67) 전 경인일보 기자도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박 전 기자는 지난 2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번에 특정된 용의자가 전체 사건에 전부 관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범행 수법이 무서울 정도로 동일한 사건은 이 중 4~5개 정도로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화성에서는 여성이 살해되면 사건 리스트에 추가했기 때문에 특정된 용의자가 전부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19일 인터뷰를 통해 “DNA가 확인된 건수에 대해서는 이 사람이 진범일 개연성이 높은데 나머지 6~6건에 대해서는 이 사람이 범인인지 현재로서는 확인을 더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씨가 진범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1992년 후임으로 배치된 신병이 ‘살인하면 처벌이 어떻게 되느냐’면서 ‘뒷집에 사는 할머니’, ‘빨간 구두를 신은 결혼 앞둔 여성’ 등과의 성관계를 언급했다”며 후임병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의심된다는 글을 올린 김기문 행정사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씨와 후임병은 동일 인물이 아니다”며 “나이대가 전혀 맞지 않는다. 이씨가 전체가 아닌 일부 사건의 진범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씨는 자신은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관련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상태다. 이씨는 충북 청주에서 처제(당시 20세)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1994년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현재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