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Anne-Marie)의 노래 ‘2002’가 국내 대중음악 공인 순위표인 가온차트의 디지털 종합 차트에 랭크된 기간이다. 이 곡은 2019년 9주차(2월21일~3월2일) 차트에 78위로 데뷔한 이후 가장 최신 차트인 38주차(9월15~21일)까지 단 한 번도 100위권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순위를 계속 높여가 6월 월간 차트에선 팝송 중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국내 가요시상식에서 앤 마리가 음원상을 수상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6일 가온차트가 발표한 38주차 디지털 종합 차트를 뜯어보면 앤 마리의 ‘2002’(14위) 외에도 외국 가수의 노래들이 여럿 발견된다. 션 멘데스와 카밀라 카베요가 함께 부른 ‘세뇨리타’(Senorita·22위), 빌리 아이리쉬의 ‘배드 가이’(Bad Guy·26위), 나오미 스콧이 부른 영화 ‘알라딘’ OST ‘스피치리스’(Speechless·31위), 라우브 ‘파리 인 더 레인’(Paris in the Rain·46위) 등이 50위 안에 랭크됐다. 톱100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순위에 든 팝송의 수는 총 9곡으로 는다. ‘2002’가 1위를 차지했던 6월의 디지털 종합 차트에서는 최상위 순위곡 10곡 중 3곡이 팝송(‘2002’·‘배드 가이’·‘스피치리스’)이었다.
가온차트 김진우 수석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음악시장에서 팝송의 비중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팝송의 비중이 가요 대비 2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음악시장이 사전 검열 등으로 얼어붙었던 1980년대에는 팝송이 약 60%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였지만, 최근 K팝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상황에서 이 같은 움직임은 이례적이다.
자신 취향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소비자들의 감상 방식 변화가 이런 현상을 이끌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김 연구원은 국내에서 인기인 팝송 대부분이 음원 차트에서 순위를 ‘역주행’했다는 사실을 짚으면서 “국내 음악 소비자들이 과거 톱100 위주의 음악 감상 패턴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고, 이런 변화가 수면 아래 가라 앉아 있는 팝 음원의 역주행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02’는 지난해 4월 발표된 곡으로 가온차트 100위 안에 들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 빌리 아이리쉬 ‘배드 가이’는 발매 2개월 여 만에, 라우브 ‘파리 인 더 레인’은 5개월여 만에 가온차트 100위에 진입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앤 마리, 빌리 아이리쉬 같은 가수들은 10대들의 지지가 절대적”이라면서 “유튜브의 발달로 해외에서 주목받는 가수들이 실시간으로 국내에 유입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평론가는 이어 “앞으로도 10대~20대 초중반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젊은 가수들이 계속해서 인기를 얻고, 이들의 음악을 음원 차트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나 광고 삽입곡을 통해 국내에 알려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앤 마리나 빌리 아일리쉬처럼 젊은 청취자들이 발굴하고 체화하는 팝스타들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