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YB의 프런트맨 윤도현은 2년 전 산으로 들어갔다. YB의 새 음반 작업이 길어지자 ‘음악에만 올인하자’며 내린 특단의 조치다. 그는 산속에서 지내는 두 달간 ‘자연인’이 됐다. 매일 눈을 뜨면 먹고, 자고, 노래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덕분에 그가 서울로 돌아왔을 땐, YB의 정규 10집 작업에 눈에 띄는 진척이 생겼다고 한다. 11일 서울 증산로 문화비축기지 T2공연장에서 만난 YB가 들려준 얘기다.
YB는 전날 정규 10집 ‘트와일라잇 스테이트’(Twilight State)를 냈다. 6년 만에 내는 정규음반이자 13곡이 실린 대작이다. 타이틀곡도 세 곡이나 된다. 다국적 혼성그룹 슈퍼올가니즘 멤버 솔(Soul)이 내레이션으로 피처링한 ‘딴짓거리’, 이응준 시인의 시에서 영감받아 만들어진 ‘생일’, 그리고 베이시스트 박태희가 작사·작곡한 ‘나는 상수역이 좋다’가 이 음반 타이틀곡이다.
팀의 기타리스트 허준은 “YB가 지켜야 할 것과 진화해야 할 것들이 공존하는 음반”이라고 이번 10집을 소개했다. 타이틀곡을 여러 곡으로 정한 것도 이런 면모를 두루 보여주기 위해서다. ‘생일’은 YB가 지켜야 할, 위로와 희망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노래다. 반면 ‘딴짓거리’는 진화에 대한 YB의 의지를 가장 많이 반영한 노래다. 포크록 장르의 ‘나는 상수역이 좋다’는 서정적인 분위기로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에 적격이다.
“가만히 있으면 물살에 쓸려서 뒤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 그 자리를 지키거나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게 밴드가 가진 숙명인 것 같아요. 진화하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 버릴 것 같다는 부담일 수도 있고요.” (허준)
분단의 아픔을 담은 초창기 노래 ‘임진강’을 시작으로 권력자들을 향한 날선 비판을 담은 2014년작 ‘왕관 쓴 바보’까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자주 발표하온 YB는 이번 음반에서 개인의 아픔에 집중했다. 윤도현은 “사회가 광기로 흘러가고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뭘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서 “섣불리 다른 걸 얘기하기보다는 개인의 여러 감정을 음악에 매칭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이 공명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순간, 그것은 유의미한 ‘사회적 목소리’가 된다. YB의 이번 음반도 그렇다. 음반에 서려 있던 개인의 비극은 마지막곡 ‘거짓’에서 타인과 연대해 거짓과 싸우겠다는 투쟁의 메시지로 이어진다. 박태희는 “절망 가운데에 있는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음반 초반엔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가 지배적이지만, ‘반딧불…그 슬픔에 대한 질문’이나 ‘거짓’ 같은 노래를 통해 절망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제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에 대해서 내 안에 확신이 서면 좋을 텐데, 확신이 선 상태로 살기가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사를 쓸 때 나와 내 삶에 집중해보려고 했고, 그걸 그대로 드러냈을 때 듣는 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윤도현)
“가사가 음반으로 나온다고 해서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나를 통해 쓰인 가사고 YB를 통해 노래가 불리지만, 그 가사에 맞는 삶을 살려고 다들 많이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어요.” (박태희)
YB는 오는 11월30일과 12월1일 서울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정규 10집 발매 기념 공연을 연다. 윤도현은 “앞으로 한두 달 활동하는 게 아니라 몇 년간 이 음반으로 공연을 열 텐데, 타이틀곡뿐 아니라 모든 노래들이 새롭게 받아 들여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