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설리 떠난 자리…“누리꾼·기획사·언론 모두 달라져야”

故설리 떠난 자리…“누리꾼·기획사·언론 모두 달라져야”

故설리 떠난 자리…“누리꾼·기획사·언론 모두 달라져야”

기사승인 2019-10-15 16:39:35

14일 25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가수 겸 배우 설리는 생전 여성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통념을 쉽게 따르지 않던 인물이었다. 단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정해진 행동양식과 사고를 강요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불합리하지만, 설리를 향한 말들은 유독 가혹했다. 그의 비보가 전해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악플러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인터넷 실명제를 실행시켜 달라’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기도 했다.

2005년 SBS 드라마 ‘서동요’로 데뷔한 설리는 2009년 그룹 에프엑스 멤버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연기 활동에 집중하겠다며 팀을 탈퇴한 뒤,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 솔로곡 등으로 팬들과 만났다. 최근까진 JTBC2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의 진행을 맡아오기도 했다. 설리는 사망 전날까지도 광고를 촬영하고 SNS 라이브 방송도 진행해 팬들의 충격은 더욱 크다. 동료 연예인들은 일정을 취소하고 추모 글을 올리며 그의 마지막을 기리고 있다.

◇ “악독한 온라인 문화 개선되길”

설리는 생전 악의적인 비방에 자주 시달렸다. 2014년 악성 댓글과 루머 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계를 잠시 떠나있기도 했다. 그의 연애는 지탄의 대상이 됐지만, 그의 연애가 타의에 의해 ‘까발려진’ 것이라는 사실은 자주 망각됐다. 그가 SNS에 올린 사진은 ‘논란’, ‘기행’ 등의 단어와 함께 기사화됐고, 악성 댓글은 넘쳐났다. 의도치 않았던 노출 사고 역시 숨겨지기는커녕 온라인 매체와 누리꾼들의 먹잇감이 됐다. 최근엔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자 ‘악플의 밤’을 통해 “브래지어는 건강에도 좋지 않고 액세서리일 뿐”이라고 맞서기도 했다.

아직 사망원인이 최종적으로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경찰은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누리꾼들도 설리를 향한 모욕적인 언사와 희롱들을 문제 삼으면서 “악플 금지법이라도 만들자”는 주장을 내고 있다. 미국 빌보드의 K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자민은 설리의 비보를 다룬 기사에 “K팝 스타, 특히 여성들이 대중의 반발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설리는 떠났다”면서 “그의 당당한 삶의 방식은 한국의 유명인들이 지켜야 할 전통적이고 가혹한 기준을 바꿀 뿐 아니라, 누리꾼들이 유명을 조롱하던 악독한(toxic) 문화를 나아지게 하길 바란다”고 썼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댓글의 비판적인 기능은 분명 중요하지만, 인신공격 등의 비난은 반드시 자정돼야 한다. 법적 규제보단 시민들의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봤다.

◇ 기획사와 언론도 달라져야

악성 댓글로 고통 받는 연예인은 한둘이 아니고 그로 인한 피해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획사들은 최근 몇 년 간 ‘법적 대응’ 카드를 꺼내들며 대응에 나섰지만, 효과가 길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대형 기획사는 형식적으로나마 멘탈 케어를 하지만 작은 기획사로 갈수록 취약하다. 연예인들은 일반 직종에 비해 심리적으로 취약한 경우가 많은데, 공개적으로 상담을 받기는 어렵다. 이에 대한 종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룹 신화의 멤버 김동완은 SNS를 통해 “많은 후배들이 돈과 이름이 주는 달콤함을 위해 얼마만큼의 마음의 병을 갖고 일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며 기획사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본인이 원해서 혹은 빠른 해결을 위해 약물을 권유하는 일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면서 운동선수들의 사례에 비유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언론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네이버 ID bani****는 “브레이크 없는 언론은? 그것도 법으로 만들어라”고 주장했다. ID hoyi**** 역시 “악플러들도 엄벌해야하지만, 기자들도 본인 밥그릇 때문에 일부로 악플 유도하는 자극적인 기사들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SNS가 과잉 밀집돼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사람에 대해 일방적인 평가와 쏠림 현상이 존재한다. 언론은 객관성과 균형성을 갖고 평가해야 하는데, 설리를 비롯한 여성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관음적이거나 성적인 관점에서 소비해왔다. 노출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의미와 가치를 도외시한 점이 문제”라고 짚었다.

정덕현 평론가도 “언론이 연예인의 SNS를 기사로 옮기고 포털이 이를 노출하면서, 연예인의 사생활이 무분별하게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달라져야 한다. 연예 기획사들도 연예인의 SNS를 일종의 창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적인 공간으로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면서 “또 고인의 경우 만성적인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를 겪은 것으로 보이는데, 기획사에서 상시적으로 (연예인들의 정신건강을) 관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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