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대로 나서는 K팝…현지화 대신 “동·서양 결합”

세계무대로 나서는 K팝…현지화 대신 “동·서양 결합”

세계무대로 나서는 K팝…현지화 대신 “동·서양 결합”

기사승인 2019-10-18 07:00:00

“세상에. 그들이 여기에 전통 현악기를 넣었네!” 그룹 NCT와 웨이브이(WayV)를 좋아하는 외국인 팬 A씨는 그룹 슈퍼엠의 데뷔 음반에 실린 ‘아이 캔트 스탠드 더 레인’(I Can't Stand the Rain)을 듣고 놀라워했다. 후렴구에 등장하는 낯선 현악기 소리 때문이다. A씨가 SNS에 “얼후(중국의 전통악기)와 비슷한 소리가 나는데, 비슷한 한국악기를 쓴 것이냐”고 적자, 또 다른 외국인 팬 B씨가 나서서 “그렇다. 아쟁이라는 악기”라고 설명했다. 일본에 사는 그룹 엑소의 팬 C씨는 “슈퍼엠의 데뷔 음반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노래에 한국 전통 악기 소리를 넣은 것”이라고 했다.

슈퍼엠은 SM엔터테인먼트가 미국 캐피톨 뮤직 그룹(CMG)와 손잡고 만든 팀이다. 태민(샤이니), 백현·카이(엑소), 태용·마크(NCT), 루카스·텐(웨이브이)처럼 현직에서 활동 중인 스타들이 모여 ‘K팝 어벤저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양과 서양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세계의 첫 주인공이 바로 슈퍼엠”이라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말처럼, 이들 음반엔 동양적인 요소를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앞서 언급한 ‘아이 캔트 스탠드 더 레인’은 아쟁 외에도 대북 연주를 넣어 아시아와 영미 팝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타이틀곡 ‘쟈핑’(Jopping)의 포인트 안무는 중국 무술인 쿵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지만, 슈퍼엠은 현지화 대신 ‘K팝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다. 록·R&B·힙합 비트가 결합한 음악에 격정적인 퍼포먼스가 더해진 ‘쟈핑’은 SMP(SM Music Performance)의 전형을 따른다. 카이는 미국 매체 리파이너리29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의 취향에 맞춘 음악을 선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차별화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미국엔 없는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쟈핑’을 (타이틀곡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백현 역시 “서양 음악과 아시아 음악의 조화를 강조하고 싶었다”며 ‘아이 캔트 스탠드 더 레인’을 예시로 들었다. 리파이너리29는 이들과의 인터뷰를 소개하는 기사에 ‘슈퍼엠이 한국적인 색깔을 지킨 채 미국 시장 정복에 나선다’(SuperM Aim to Conquer America By Staying Korean)는 제목을 붙였다.

슈퍼엠의 데뷔 음반은 발매 첫 주 16만8000장(디지털 음원 스트리밍·다운로드 기록 합산 기준)가량 팔리며 빌보드 메인 음반 차트에 1위로 진입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슈퍼엠은 거대하고 열정적인 팬덤을 지닌 슈퍼그룹”이라며 “올스타 라인업 슈퍼엠의 시너지가 K팝의 다음 단계를 이끈다”고 봤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한국의 충성도 높은 팬덤 문화가 해외의 K팝 팬덤에서도 보편화됐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앞으로 온라인상에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뉴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할 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신인 아이돌 그룹 TOO(Ten Oriented Ocherstra)는 팀 이름에서부터 ‘아시안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적의 연습생 20명 가운데 10명을 선발해 올해 하반기 론칭할 계획이다. 팝의 뿌리는 서양에 있지만, 음악에 10가지 동양적인 가치를 더해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것이 TOO의 목표다. 정창환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는 “K팝은 임팩트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한국 가요나 한국어 가사를 모르는 이들도 단숨에 (K팝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비주얼이나 춤 등 강한 인상을 주는 요소가 필요한데, 그런 요소들이 모인 게 K팝”이라고 했다.

다만 이런 전략이 영미 시장에서 얼마나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김작가 평론가는 “팬덤의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그들의 충성도를 노리는 전략으로 보인다”면서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K팝 시장에선 해체되다시피 했는데, 이런 아시안 마케팅을 내세워서 미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긴 어렵다. 오히려 K팝이 주도권을 잡은 아시아 시장에 새롭게 출사표를 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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