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건의료, 위험하다"..석학들 "초고령·저성장 등 변화 위협' 지적

"한국 보건의료, 위험하다"..석학들 "초고령·저성장 등 변화 위협' 지적

"빈틈많은 한국 보건의료체계...가만히 있으면 지속 못할 것" 경고

기사승인 2019-10-31 04:00:00

"우리 존재기반을 흔들만한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지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30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지속가능한 미래 보건의료체계'를 주제로 열린 제 13회 보건의료포럼에서 박은철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지속가능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보건의료계 석학들이 모인 단체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주최한 이 자리에서 보건의료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혁신이 필요하다는데 한목소리를 냈다. 초고령화, 저출산, 이례적인 저성장, 4차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위협받는 보건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재검토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보건의료 환경 및 이용행태에는 빈틈이 많다. 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력수준은 OECD국가 평균을 밑돌지만, 병상수는 OECD 2위(인구 천명당 11.98)로 평균(인구 천명당 4.79)을 훨씬 넘길 정도로 넘쳐난다. 

의료이용도 높다. 특히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외래진료 횟수는 17.0회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입원환자의 평균 재원일수도 연간 18.1일로 일본(28.5일)에 이어 2위 수준이다. 반면, 의료비는 비교적 낮은 수준이다. OECD 국가의 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액 평균은 8.9%였는데 한국은 7.6%로 다소 낮았다. 2017년 국민 1인당 경상의료비 지출금액은 평균 2897달러로 OECD 평균인 4069달러보다 낮았다. 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액을 따져봐도 OECD 평균은 8.9%인데 비해 한국은 7.6%로 다소 낮았다.

박 교수는 "우리 국민의 외래진료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은데 의료비는 평균 이하 수준이다. 유독 많은 외래진료를 많이해서 우리가 다른 국가보다 건강해졌다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1차의료의 질은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고, 현재의 단계가 지속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며 "앞으로 초고령화, 저출산, 저성장에 의해 의료이용은 더 높아지고, 재원은 더 줄어들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되짚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관련해 이미 미국은 지난해, 영국은 올해, 일본은 지난 2015년에 국가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장기계획을 세워 새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서둘러 관련 정책의제를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지속가능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의료, 폭발적 의료수요에 대응하려면 혁신이 시급하다. 우리가 손대야할 미래 보건의료 체계는 보건의료기본법과 많은 관련이 되어있는데 보건의료기본법에 대한 구체적 장기계획은 법이 만들어진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없는 것이 문제다"라며 국가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장기계획 마련을 촉구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도 의견을 같이 했다. 다만, 보건의료체계 장기계획 마련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분야가 광범위하고 이해관계가 얽힌 부분이 많은만큼 전문가와 국민,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다. 

권순만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부회장은 "미래를 이야기할 때에는 경계를 뛰어넘는 사고가 필요하다. 앞으로 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지 불확실성이 많고, 미래 바이오 테크놀로지 역할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이기 떄문에 혁신을 지나치게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중심의 정책계획을 세우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정년 이후의 삶이 길어지고, 노동시장 안전성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안정적인 소득에 대한 보험료에 의존하는 것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는 등 고려할 점이 많다. 결국 건강보험 과부하를 줄이는 것이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신현웅 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실장은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우리가 부담하는 정도 안에서 지출한다는 의미다. 현재 건강보험법상 보험요율을 8%까지 인상할 수 있도록 규정돼있다. 지금처럼 매년 3%씩 올린다면 2026년이 되면 법상으로 더이상 올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법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며 "대개 보험료 인상은 소득증가분까지 가능하기때문에 언젠가 보험료를 못 올리는 상황이 온다. 국민들이 부담을 하거나, 지속가능하도록 의료지출을 줄여야 하고, 그것조차 한계가 되면 의료 혜택을 줄여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한 철학적 고민부터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2000년도에 보건의료기본법이라는 훌륭한 법을 만들었음에도 법제정이 2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도 보건의료 전반에 걸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발전 계획이 수립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부당국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 소장은 "부분적으로 발표된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과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계획 또한 산발, 분절적이며, 정치상황에 따라 흔들려왔다"며 "우리 사회에서 보건의료체계가 어떤 철학을 지향하고 있는지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책이 나오든 지속가능하지 않은 점은 너무나 자명하다. 지금이라도 큰 그림인 이데올로기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보건의료분야 혁신을 이야기할 때 의료계와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4차산업혁명에 있어 관점을 바꾸는 기존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수용할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발전적으로 이해관계자와 국민, 의료계, 보험자 등이 협력해 다양한 수준의 협의를 위해 방안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의견을 더했다. 

이러한 논의에 김헌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보건의료기본법 20년이 됐음에도 발전 계획이 나오지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다만 개별적인 계획은 많이 나왔다. 보건의료 발전계획이라고 하면 비전과 설득력있는 설명이 담겨야 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았다. 다만 굉장히 필요한 점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 나온 이야기들을 참고해 정책수립과정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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