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시동’은 걸었는데 왜 달리질 못하니

[쿡리뷰] ‘시동’은 걸었는데 왜 달리질 못하니

‘시동’은 걸었는데 왜 달리질 못하니

기사승인 2019-12-12 07:00:00

어렵게 시동이 걸렸다. 이제 시원하게 달려가나 했는데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한다. 결국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결말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든다. 대체 시동은 왜 건 거지?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은 중고로 산 오토바이에 올라탄 채 어설프고 유쾌한 추격전을 벌이는 만 18세 반항아 택일(박정민)과 상필(정해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고등학교도 자퇴한 두 사람의 목표는 분명하다. 상필은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위해 돈을 벌고 싶고, 택일은 사사건건 부딪히는 엄마 정혜(염정아)의 곁을 떠나고 싶다. 그렇게 상필은 대부업체에, 택일은 군산 중국집에 취직을 하고 만만치 않은 현실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시동’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벗어났거나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택일과 상필은 처음부터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는 삶을 온몸으로 거부하면서 등장한다. 18세 여고생 경주(최성은)는 빨간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채 복싱을 하며 남자들과 싸운다. 무서운 얼굴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주방장 거석이형(마동석)은 단발머리에 핑크색 옷을 입고 그룹 트와이스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아들이 죽지 않게 왼손으로만 등짝 스매싱을 때리는 오른손잡이 전직 배구선수 정혜는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토스트집을 열고, 중국집 배달원 배구만(김경덕)은 주방장을 꿈꾸며 밤마다 요리를 공부한다.

등장인물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예측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관객들의 예측을 매번 빗나가게 하는 만화적인 캐릭터와 상황은 그 자체로 코미디가 되어 극의 분위기를 밝게 한다. 특히 마동석이 연기한 거석이형은 존재 자체가 코미디다. 방금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어색한 움직임과 귀여운 표정을 보여주는 거석이형은 영화의 판타지를 담당한다.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영화 속 세계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비중이 높지 않음에도 매번 엉뚱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거석이형의 존재는 ‘시동’의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노란 머리를 한 채 툭하면 욱하는 택일이다. ‘시동’에서 택일은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오는 역할을 담당한다. 독특한 인물들로 가득한 주변 세계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며 한숨을 쉬거나 욕을 하는 택일은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전형적인 만화 주인공이다. 하지만 택일은 관객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캐릭터다. 거칠고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상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이야기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페이스메이커다. 거석이형이 ‘시동’을 만화적 코미디로 끌고 가면, 택일은 다시 이야기를 현실로 되돌려놓는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두 인물이 만들어놓은 균형에서 조금씩 이야기의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문제는 영화의 메시지다. 인물들이 왜 정해진 길에서 벗어난 선택을 했는지, 그것을 위해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하는지를 공들여 보여준 ‘시동’은 각자 원하는 삶을 사는 게 맞다는 김빠지는 결론을 내놓는다. 주체적인 삶을 정해진 삶과 대비시키지도 않고, 인물들이 맞이하는 결말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결말은 모호하고 정리가 덜 된 느낌이 든다. 관객들은 마치 반전영화를 보고 나온 것처럼 자신이 영화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처음부터 기억을 되돌려볼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도 아무것도 없다는 게 진짜 반전이다.

‘변산’, ‘타짜3’에 이어 ‘시동’까지 현실 반항아 3부작을 완성한 배우 박정민과 할리우드로 가기 전 마음껏 코믹한 연기를 펼친 마동석의 묵직한 존재감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대체 어떤 배우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신인 배우 최성은의 등장도 반갑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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