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천문: 하늘에 묻는다’ 낯선 상상력으로 보는 익숙한 역사

[쿡리뷰] ‘천문: 하늘에 묻는다’ 낯선 상상력으로 보는 익숙한 역사

‘천문: 하늘에 묻는다’ 낯선 상상력으로 보는 익숙한 역사

기사승인 2019-12-17 06:00:00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는 조선시대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세종(한석규)와 관노 출신 천재 과학자 장영실(최민식)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장영실은 세종에게 발탁돼 노비를 면하고 벼슬에 오르며 함께 각종 천문의기를 발명해왔다. 하지만 사대를 어겼다는 이유로 명나라에 압송될 위기에 처하고 세종은 이 일을 어찌 해결할지 고민한다. 그러던 중 장영실이 제작한 안여(安與, 임금의 가마)가 부서지는 사고까지 발생해 더욱 궁지로 몰린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Faction) 사극이다. “대호군 장영실이 안여 만드는 것을 감독하였는데, 튼튼하지 못하여 부러지고 허물어졌으므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는 세종실록의 일부분과 장영실이 곤장 80대형에 처한 후 어디에서도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 영화다. 제작진은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질문하고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발휘해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와 감정을 132분의 영화로 풀어냈다.

‘천문’은 영화 ‘사도’(감독 이준익)처럼 이미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를 두 인물에 집중해서 그려간다. 단순히 사건을 정확하고 흥미롭게 서술하는 방식 대신, 두 사람의 일화와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 속 사건에 닿는 전개를 선택했다. 감독은 세종과 장영실을 풍성한 감정을 갖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캐릭터로 해석했다. 두 인물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뿐 아니라, 일상에서 볼 법한 솔직한 면모를 그리는 데 공을 들였다. 의외의 지점에서 웃음이 터지고, 생각지 못한 애절한 순간을 여러 번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정치와 외교부터 코미디와 멜로까지 다양한 장르가 모두 담긴 영화다.

세종이 주인공인 만큼 어김없이 한글 창제 이야기가 등장한다. 대신 역사왜곡에 휘말렸던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와 달리, 한글과 관련된 가설을 세우거나 깊숙이 들어가진 않는 등 나름대로의 선을 지킨다. 한글 창제라는 강력한 소재를 이야기 전개를 위한 중요한 명분으로 기능하게 한다. 덕분에 세종이란 인물을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입체적이고 복잡했는지, 그것을 함께 겪고 지켜보는 장영실의 마음은 어땠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세종과 장영실을 연기한 배우 한석규와 최민식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감독이 열어놓은 공간에서 두 배우는 주어진 대사 이상의 감정과 상황들을 각자의 해석에 기반을 두어 표현한다. 인물의 표정과 말투, 몸짓이 시시각각 역동적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 않다. 배우들의 연기를 영화의 이야기에 녹여낸 감독의 연출력도 큰 지분을 차지한다. 허진호 감독 특유의 멜로 감성은 조선시대 두 남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배우 김홍파, 허준호, 김원해 등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의 열연도 영화를 단단하게 받친다. 특히 영의정 역할을 맡은 배우 신구는 사실상 세 번째 주인공이다. 줄곧 나른한 표정과 말투를 유지하다가 가끔씩 보여주는 섬뜩한 눈빛 연기는 관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26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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