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상공인들 돈 걷어 회사 키워놓고, 해외 기업에 넘겼다니 기분이 좋지 않죠. ‘우리가 어떤 민족이냐’ 묻던 곳 아닙니까. 그동안 요기요가 배민을 잡겠다고 수수료 인하 등도 펼치고 했는데, 이제 그런 것도 없겠네요. 국내 배달앱 1~3위가 모두 한 독일 회사로 넘어갔는데, 독점이 아니면 뭡니까? 정부에서 잘 판단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서울 노량진동에서 10년째 족발 가게를 운영 중인 최모(58) 씨는 최근 배달 어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배민)과 ‘요기요’의 합병 소식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지난 13일 국내 배달앱 1위 배민의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에 회사를 4조7500억 원에 매각하는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DH는 현재 국내에서 동종업계 2위인 ‘요기요’와 3위 ‘배달통’을 운영 중인 회사다. 이에 DH의 국내 배달앱 점유율은 무려 90%에 달하게 됐다.
이 같은 소식에 상인들은 한목소리로 독점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다. 1위부터 3위가 모두 한 회사가 되면서 향후 담합은 물론, 수수료 인상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노량진역 인근에서 분식집을 운영 중인 이모 씨는 “식당 전반적으로 홀 손님은 줄어들고, 배달 주문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배달앱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향후 이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부리게 되면, 뾰족한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현재 다수의 식당 점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배달앱을 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상인들은 많게는 무려 4개에서 최소 2개의 배달앱을 사용했다. 최대한 많은 앱에 등록해야 주변 식당들과 경쟁이 되는 탓이다. 다만 앱이 많을수록 지출 비용은 더 늘어난다. 최근 동작구에서 한식집을 연 한 점주는 “한 달 매출의 약 20%는 배달앱, 배달대행 비용으로 쓰는 것 같다”면서 “(배달앱들이) 담합이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두렵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최근 논란이 번지자, 배민은 “담합은 물론, 수수료 인상도 없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우아한형제 차기 CEO 김범준 부사장은 지난 17일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수수료 인상 여부에 대해 “인수합병으로 인한 중개 수수료 인상은 있을 수 없고, 실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아울러 배민 측은 “합병 뒤에도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간 경쟁 체제를 지금 상태로 유지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다만 다수의 점주들은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그간 배민과 요기요는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점주와 소비자 유치를 위해 일명 ‘쿠폰 전쟁’을 치렀고, 중개수수료 인하에도 발 벗고 나서왔다. 하지만 으르렁대던 호랑이들이 이젠 손을 잡았는데, 과연 전처럼 경쟁을 벌이겠냐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 우아한형제들과 DH외로 쿠팡과 카카오 등이 배달앱 시장에 진출한 상태지만, 이들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박호진 한국프랜차이즈협회 대외협력실장은 “여론이 좋지 않은데, 지금 당장 수수료를 인상한다고 하겠느냐”라며 “독점이 이뤄진 후 추후 몇 년은 내다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단 수수료 뿐 아니라, 기존 업주나 소비자에게 제공되던 서비스의 질과 혜택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점도 큰 문제”라며 “세계적으로 독점기업에 대한 문제가 화두인데, 정부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본다”라고 덧붙였다.
소상공인을 위한 한국 대표 스타트업으로 포장해온 배민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것 역시 큰 원성을 사고 있는 요인이다. 배민이 DH에 넘어가면서 한국의 ‘유니콘기업’ 수도 기존 11개에서 10개로 줄어들게 됐다. 유니콘기업은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말한다. 한 분식 프랜차이즈 점주는 이를 두고 “한국은 배달의 민족이 아닌, 신뢰와 정의 민족인데, 배민은 국민적 신뢰를 잃은 것 같다”라고 개탄했다.
세간의 시선은 이제 공정거래위원회에 쏠린다. DH가 배민을 인수하려면 최종적으로 공정위의 심사 문턱을 넘어야 한다. 공정위가 경쟁 시장의 범위 기준을 배달, 배달앱, 이커머스 등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가 관건이다. 배달앱 시장만 놓고 보면, 독점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다만 공정위가 배달앱 시장이 신사업이라는 점을 감안해, ‘수수료율 인상률 제한’ 등을 내세워 조건부 승인을 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