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도 자존심이 상한다. 영화 ‘히트맨’(감독 최원섭)의 얘기다. 감독이 의도한 웃음보단 배우들의 매력과 애드리브에 기댄 웃음이 많다. 영화의 전개를 위해 인위적으로 설계된 듯한 인물도 보인다. 무엇보다 코믹·액션·가족 드라마 등 각 장르를 펼쳐내는 방식이 구태의연하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욕하면서(코믹) 싸우는(액션) 가장(가족)의 이야기다.
‘히트맨’은 국정원 비밀 프로젝트 방패연의 정예 요원 출신 웹툰 작가 준(권상우)이 술김에 국가 기밀을 웹툰에 폭로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국정원은 준이 테러 조직과 결탁했다며, 조직은 전날의 설욕을 복수하겠다며 준의 가족을 납치한다. 방패연의 대장 천덕규(정준호)와 준을 우상으로 여기던 후배 철(이이경)도 이 추격전에 합류한다.
“너도 네 아버지처럼, 나라를 빛내고 싶지 않나.” 낮게 깐 목소리로 국가를 위해 복무하라던 덕규의 초반 모습이 ‘수컷’들의 영화를 예상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히트맨’은 ‘모자란 수컷’들의 영화다. 그런데 영화는 이 ‘모자람’의 맛을 제대로 요리해내지 못한다. 욕지거리나 주먹질로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 수법은 이미 오래됐고, 가장으로서의 남편·아버지를 강조하거나 ‘싸나이 우정’으로 감동을 예열하는 방식도 요즘 관객들에겐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배우 허성태가 연기한 국정원 고위직 형도는 이야기 진행을 위해 인위적으로 설계됐다는 인상이 짙다. 고압적이고 잔혹한 성격이 극중 다른 인물들과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테러집단의 우두머리 제이슨(조운)은 기시감이 강한 캐릭터로 별다른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특히 마지막 전투신에선 코미디에 대한 야심이 과했다. 등장인물들을 골고루 보여주겠다는 의도였을까. 각자 산발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전개가 늘어진다. 오고가는 고성은 피로감을 더한다.
물론 웃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배우 개인의 매력에 밀착한 기발한 대사도 여럿 있다. 가령 위기 상황을 넘긴 덕규가 휴대전화에 머리를 조아리며 “식사 한 번 하시자”고 말하는 장면이 그렇다. 권위적이던 극 초반 모습과 대비되는 비굴함, 그럼에도 업무적인 미소와 인사는 잊지 않는 모습은 정준호가 MBC ‘라디오스타’에서 보여준 웃음 포인트와 일맥상통한다. “마누라(아내)다”라는 준의 말에 “마누-라다? 거긴 어디(어느 테러 조직)에요?”라고 되묻는 철의 대사는 국정원의 과대망상적인 음모론과 어우러져 웃음을 안긴다. 두 대사 모두 배우들의 애드리브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실사를 오가는 화면은 눈을 즐겁게 만든다. 가수 드렁큰 타이거의 ‘몬스터’(MONSTER)를 비롯해 힙합 음악을 OST로 활용한 점도 재치 있다. 권상우는 코믹과 액션을 오가며 매력을 흩뿌린다. 정준호의 느긋한 호흡이나 이이경의 차진 대사도 매력적이다. 더욱 과감하게 ‘B급 코미디’를 표방했으면 어떨까 아쉬움이 남는다. 15세 관람가. 22일 개봉.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