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암컷이 무리를 이끄는 하이에나와 달리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 속 권력자들은 ‘부계 상속’을 원칙으로 한다. 김병훈 변호사는 자신의 세운 법률사무소를 딸이 아닌 사위에게 물려줬고, 이슘 그룹의 하 회장(이도경) 역시 열정과 능력을 겸비한 딸 대신 술과 약과 내연녀에 빠져 사는 아들에게 그룹을 넘겨주려 한다. 대형 로펌 송&김의 송필중(허경영) 대표는 파트너 변호사 윤희재(주지훈)가 “내 자식이나 다름없다”면서 주요 사건을 그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윤희재마저, 남자 동료들로만 이뤄진 별도 팀을 꾸려 필중이 지시한 업무를 처리한다. 하지만 이 견고한 ‘이너 서클’에서 배제된 여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우며 승리를 쟁취한다. 당신이 눈여겨 봐야할 ‘하이에나’ 속 네 명의 여자 캐릭터들을 소개한다.
정금자
도심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며 언젠간 이 빌딩을 사고야 말겠다고 마음 먹는 정금자(김혜수)는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이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 변호사를 위장 연애로 속여 핵심 정보를 빼내고, 때론 상대 변호사를 사칭하기도 하며, 의뢰인이나 주변인을 회유와 협박하기도 한다. 그의 목표는 선이나 정의를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승리 그 자체다. 윤희재가 과거를 헤집으며 금자의 진심을 찾아내려 애쓸 때도 금자는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로 나아간다. 남자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여자 캐릭터들이 의욕에 넘쳐 실수를 저지르거나, 감정이 과잉돼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드라마들 사이에서 금자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물론 여기에는 윤리적인 고민도 따른다. 가령 하찬호(지현준)의 감금·폭행에 시달리던 서정화(이주연)를 다시 하찬호 옆에 돌아가게 만든 것을 응원해도 되는 걸까. 황미라(이선아)의 갑질로 운전기사에게 폭행당한 피해자에게 ‘당신이 이길 방도가 없으니 합의하라’고 종용하는 결론을 ‘사이다’라고 봐도 될까. 다만 변화의 단서는 짚을 수 있겠다. 기업 인수 합병을 위해 아동학대를 당한 피해자에게 소송을 걸라고 설득한 금자는 “(합병이 완료되면) 소송 철회할 거 아니에요?”라는 부현아(박세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가 그래? 내 방식이 그딴 재미없는 엔딩이라고?” 어느 때보다 금자의 승리를 열렬히 바라게 되는 이유다.
명대사: “근데 나는 오늘을 살아. 너처럼, 과거에 묶여있지 않고”
이지은
짧고 깔끔한 헤어스타일에 뿔테 안경. 단정하면서도 기동성을 높인 바지정장. ‘다나까’ 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말솜씨. 충 법률사무소 시절부터 정금자와 함께해온 이지은(오경화)은 드라마가 통념적으로 묘사해온 ‘여비서’의 정 반대편에 있다. 지은의 주력 분야는 정보 수집. 윤희재의 사생활과 취향을 캐내는 것부터 이슘 그룹의 내부 사정이나 권력 관계, 송&김 변호사들의 성향까지 속속들이 알아낸다. 금자와는 말하지 않아도 속내가 통하는 ‘영혼의 친구’지만, 그렇다고 사생활에 깊은 관심을 두거나 감정적으로 개입하지도 않는다. 한 마디로 완벽한 직장 동료의 현현. 심지어 지은은 금자의 독특한 패션에도 일조하는데, 금자가 송&김의 러브콜을 받고 “옷(출근복) 준비해야겠다”고 하자 지은의 답은 이랬다. “무난하면서 튀는 걸로 고르겠습니다.” 이 무슨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소리인가 싶은데, 깃 넓은 붉은 상의에 얌전한 검은 바지를 매치한 금자의 모습을 보니 그럭저럭 수긍이 간다.
명대사: “여자 하나가 세상을 바꾸기도 하죠”
부현아
부현아에겐 결함이 없다. 능력이 출중해서 32세 어린 나이로 ‘최연소 파트너 변호사’가 될 유망주로 꼽힌다. 집안도 빵빵해 송&김 안에선 ‘여자 윤희재’로 불린단다. 하지만 희재와 달리 현아는 ‘사내 정치’에 관심이 없다. 희재는 필중을 정&김의 진정한 주인으로 여긴다. 송&김 공동 대표인 김민주(김호정)의 지시로 그노시스 합병을 추진하면서도, 필중이 맡긴 업무를 처리하느라 가기혁(전석호), 김창욱(현봉식)과 함께 ‘딴 눈’을 판다. 오직 현아만이 제 할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초반 금자를 견제하는 듯하면서도 그의 능력을 본 뒤론 유능한 조력자가 되는 현아는 H팀 팀원들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게다가 백희준(오윤홍)을 대면할 땐 의외의 대범함과 임기응변 능력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뒤에선 다리가 풀리고 한숨을 내쉴지언정, 맞닥뜨려야 할 상대 앞에서는 자신감과 여유를 잃지 않는다. ‘여자 윤희재’가 아닌 ‘부현아’로 불려야 마땅한 인물.
명대사: “(협박)합니다. 대상과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데 현명한 사람들은 달리 받더라고요. 안내, 혹은 경고라고”
김민주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리즈의 중전(김혜준)이 ‘K-장녀’ 한을 보여줬다면, 김민주 대표는 ‘K-차녀’의 설움을 겪은 인물이다. 아버지인 故 김병훈 변호사는 둘째 딸인 민주가 능력 있는 변호사인데도 자신의 법률사무소를 그가 아닌 첫째 사위 필중에게 넘겨줬다. 민주가 스위스의 WTO 국제사무소에서 일하는 사이, 필중은 제 입맛에 맞게 회사를 쥐락펴락했다. 다시 회사로 돌아온 민주는 자신 몫을 찾기 위해 필중과 수 싸움을 벌인다. 필중이 회유와 협박으로 부하직원을 관리하는 반면, 민주는 우아하지만 날카로운 말로 상대를 누른다. 말수가 많지 않은데도, 한 마디 한 마디마다 뼈가 있고 날이 서렸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척 “쉬면서 천천히 일하라”는 필중에겐 “그럴 수야 있나요? 누구 좋으라고”라고 맞서고, 금자와의 기 싸움에선 ‘썩소’만으로도 모멸감을 준다. 한편 필중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마석구(송영규) 변호사는 재빨리 민주에게 줄을 서는데, 글쎄, 필중과 민주 중 더 무서운 사람은 누굴까?
명대사: “아예 푹 쉬시면 더 편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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