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양동근

안녕, 양동근

기사승인 2020-04-06 06:00:00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현대모비스의 양동근(39)이 코트를 떠난다. 불혹의 나이, 보통 선수라면 은퇴 소식이 놀랍지 않을 터지만 양동근의 은퇴 선언은 달랐다. 소식을 접한 농구팬들은 “아직 더 뛸 수 있다”, “거짓말 아니냐, 지금 기량으론 1~2년 더 뛸 수 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간혹 큰 부상으로 은퇴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선수들은 노화로 인한 경기력 부진, 기량 저하로 인해 은퇴를 결심한다. 하지만 양동근은 직전 시즌인 2019~2020시즌 40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28분24초를 뛰며 10득점에 4.6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팬들이 그의 은퇴를 ‘이르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납득할 만하다.

▲ 영광으로 가득했던 17년 

양동근의 프로생활 17년은 영광으로 가득하다. 2005년 전체 1순위로 모비스(현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고 데뷔해 2005~2006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2006~2007시즌, 2009~2010시즌, 2014~2015시즌, 2018~2019시즌 정상에 올랐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여섯 차례 우승하며 반지 6개를 손에 꼈다. ‘모비스 왕조’는 그렇게 양동근과 함께 탄생했다. 

왕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그가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2006~2007시즌 시리즈 3-3으로 맞선 KTF(현 KT)와의 챔피언 결정전 7차전에서 홀로 19득점을 폭발하며 팀의 통합우승을 견인했다. 전역 후 맞이한 2009~2010시즌에는 더욱 탄탄해진 수비력으로 팀을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끌었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6경기 평균 35분 38초를 뛰며 11득점 4.2리바운드 4.5어시스트로 맹활약하며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2~2013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4경기 평균 14.3득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 3점슛은 평균 2개를 터뜨리면서 MVP의 영예를 안았고, 쓰리핏(3회 연속 우승)을 기록한 2014~2015시즌에는 인천 아시안게임 등의 변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4살의 나이로 챔피언 결정전 4경기에서 평균 20득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며 MVP에 올랐다. 

2018~2019시즌은 양동근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평균 출전 시간이 30분 아래로 떨어진 시즌이었지만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선 9.8득점 3.5어시스트 2.5스틸로, 전자랜드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선 11.2득점 3어시스트로 건재함을 알렸다. 

▲ 성실함이라는 재능

그가 KBL 최고의 레전드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특유의 성실함 덕분이다.

그는 서울 용산고 입학 당시 키가 168cm로 수비 전문 식스맨에 불과했다. 단신에 기량도 눈에 띄지 않았던 그를 원하는 대학 농구팀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연습에 몰두했고, 한양대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 

기량을 끌어올려 기적 같이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프로에 입단했지만, 양동근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가드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패스 능력 등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유재학 감독이 “(양)동근이가 드래프트 될 당시엔 특 A급 선수는 아니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양동근은 자신을 둘러싼 의구심을 노력과 성실함을 통해 신뢰로 바꿨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왼손 드리블 연습에 매진한 것이 일례다. 데뷔 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현대모비스에서 운동량이 가장 많은 선수는 여전히 양동근이다. 농구에 관련된 것이라면 선후배를 막론하고 조언을 구했던 선수가 바로 그다.

외국인 선수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 공부에도 전념한 사실은 유명하다. 자신만의 회화 파일을 만들고, 점심시간 직후 주어지는 개인 시간을 활용해 영어 공부를 했다. 

지도자 및 동료들이 양동근에게 “성실한 선수”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양동근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본 유 감독은 “선후배들한테 보여줬던 자세와 선수로서의 성실함, 이런 걸로 보면 지도자로서도 무조건 성공한다고 본다”며 “나랑 16년을 같이 있으면서 지금도 연습할 때 어떤 얘기를 하면 한 번에 알아듣는다. 거기에 자기가 살을 붙이고 뺄게 있으면 빼고 자기만의 색깔을 입히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영혼의 파트너 함지훈 역시 “동근이 형은 농구로선수로서도 롤 모델이지만 인생으로서도 롤 모델이다. 10년 넘게 같이 했지만, 농구 외적으로 많이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가족이라고까지 생각한다”며 “모든 선수를 통틀어 가장 열심히 해온 선수이기에 앞으로도 잘해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양동근 스스로도 '성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바람이다. 그는 1일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최고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열심히 뛴 선수라고 생각한다”며 “팬들에게는 양동근이 한 번이라도 더 뛰었으면 하는 바람을 줄 수 있는 선수였다고 기억됐으면 좋겠다. 동료들에게는 ‘양동근이랑 뛰었을 때가 좋았다’라는 생각을 줄 수 있다면 성공한 선수 인생이었다고 본다. 그 판단은 동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mdc0504@kukinews.com

문대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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