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원장실에 피가 흥건” 실태조사 첫 공개

“형제복지원 원장실에 피가 흥건” 실태조사 첫 공개

기사승인 2020-04-27 09:29:12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첫 공식 조사에서 원장이 직접 살인을 저지르고 생매장을 지시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부산시는 지난 24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 용역’ 최고 보고회를 열었다고 26일 밝혔다. 용역을 맡은 동아대 산학협력단은 피해자 심층 면접과 대면 설문조사를 통해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1987년 형제복지원 참상이 세상에 알려진 뒤 행정기관 차원에서 이뤄진 사실상 첫 공식 조사다.

연구팀이 형제복지원 수용 경험이 있는 피해자 30명, 피해자 유가족 10명을 상대로 심층 면접 조사를 실시한 결과 박인근 원장이 원생 폭행과 살인에 가담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 1980년 사업차 부산에 갔다가 싸움에 휘말려 수용된 전기기술자 A씨(74)는 각종 시설을 점검한다는 명목으로 원장실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A씨는 “원장실 안에 야구방망이처럼 깎은 몽둥이 열댓 개, 대장간에서 만든 수갑 30개가 걸려 있엇다”면서 “하루는 원장이 불러서 가 보니까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고 진술했다.

돈을 벌기 위해 부산에 왔다가 형제복지원 단속반에 걸려 끌려갔다는 B씨는 “때리다가 죽어서 가마에 똘똘 말아 창고에 차곡차곡 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피해자 149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도 함께 진행됐다. 이들 가운데 형제복지원에서 퇴소한 뒤 한 차례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한 사람의 비율은 51.7%(77명)에 달했다. 지난 2016년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질환 실태조사에 따른 전 국민 평생 자살 시도 비율 2.4%의 20배가 넘는 수치다.

이번 연구 책임을 맡은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생존한 피해자를 대규모로 설문조사해 객관적 수치로 피해 정도를 증명할 수 있게 됐다”면서 “조사 권한이 없어 형제복지원에 관계됐던 사람을 명쾌하게 드러내지 못해 아쉽다. 추가적인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 말기인 지난 1975년 부산에 설립된 부랑인 수용소다. 설립 근거는 내무부 훈령 410호 “부랑아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지침”이었다. 

연고가 없는 부랑인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기술을 가르쳐 사회에 다시 내보낸다는 취지로 설립됐으나 실상은 달랐다. 연고지가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붙잡아 수용하는 등 98%가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형제복지원에는 무자비한 폭행, 불법 감금, 성폭력까지 만연했다. 12년간 형제복지원에서는 551명이 숨졌다. 피해자는 3만 명에 이른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며 검찰은 지난 1987년 박인근(2016년 사망) 형제복지원 원장을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내무부 훈령에 따른 것이었다며 무죄로 판단하고 횡령죄만 유죄로 인정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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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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