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성폭행으로 이어지는데…국회서 공전하는 스토킹 처벌 강화법

살인·성폭행으로 이어지는데…국회서 공전하는 스토킹 처벌 강화법

기사승인 2020-04-27 16:45:47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 “흉악한 스토커가 1년 전부터 사업장에 나타나 갖은 욕설과 고함을 치고 있습니다. 공권력은 저와 주변인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이 사람을 잡아 가두지도, 일시적으로 구류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프로바둑기사 조혜연(35·여) 9단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의 일부다. 조 9단은 40대 남성 A씨에게 1년 동안 스토킹 당했다면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현행 스토커처벌법이 너무 경미하고 미약한 처벌을 해서가 아닌가 싶다”고 토로했다. 국민청원과 언론 보도로 논란이 되자 경찰은 26일 조 9단이 고소한 A씨에게 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스토킹 범죄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 검거 건수는 2013년 312건, 2014년 297건, 2015년 363건, 2016년 557건, 2017년 438건, 2018년 544건으로 집계됐다. 

스토킹은 성폭행과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이웃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른 ‘진주 방화살인사건’ 범인 안인득(42)은 자신의 윗집에 사는 10대 여고생을 지속해서 따라다녔다. 이 여고생은 결국 안인득이 휘두른 흉기에 사망했다. 또 지난해 5월에는 폭행과 협박 등 스토킹으로 구속됐던 60대 남성이 풀려난 지 두 달 만에 피해 여성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현행법상 스토킹에 대한 범칙금은 최고 8만원이다. 별도로 위협이나 무단침입 등 행위가 추가되어 협박죄나 주거침입죄로 처벌되지 않는 한, ‘지속적 괴롭힘’ 이라는 경범죄 항목으로 처벌되기 때문이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41항은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따라다니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다른 국가에서는 스토킹에 대한 처벌 수위가 상대적으로 높다. 일본에서는 경찰이 가해자에게 바로 접근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를 위반한 때 2년 이하 징역이나 100만엔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물리적 접근 없이 이메일, SNS를 보내는 행위도 처벌한다. 미국에서는 스토킹 범죄자에게 최대 5년까지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스토킹 처벌을 강화하자는 논의는 꾸준히 있었다. 스토킹 처벌 관련 법안은 지난 1999년 15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후 20대 국회까지 총 14차례 발의됐다. 그러나 본회의에도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를 앞두고 있다. 스토킹의 정의, 피해자의 범위 등 쟁점을 두고 유관부처 간 조율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n번방 사태가 터지면서 법무부는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명확히 규정하는 스토킹 처벌법을 신속히 제정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가 공익근무요원이자 공범인 강모(24)씨로부터 강씨가 7년간 스토킹해온 고등학생 시절 담임교사 B씨 자녀를 살해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법무부는 지난 17일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 대응이 너무 미온적이었음을 반성한다”면서 미성년자 의제강간 기준 연령을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포함,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명확히 규정해 처벌하는 스토킹처벌법을 신속히 제정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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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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