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같이 살아요, ‘고양이 집사’

[쿡리뷰] 같이 살아요, ‘고양이 집사’

같이 살아요, ‘고양이 집사’

기사승인 2020-05-07 07:00:00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태풍 링링이 국내에 상륙하기 직전이었던 지난해 9월 초, 생후 2개월 된 길고양이를 임시 보호한 적 있다. 당시 녀석은 곰팡이성 피부염을 앓고 있어 온몸의 털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은 완치까지 한 달 이상 걸릴 거라고 내다봤지만, 웬걸, 녀석은 보름여 만에 털북숭이가 됐다. 곰팡이성 피부염이라는 게, 원래 환부를 잘 소독해주고 영양 상태만 좋으면 금세 이겨낼 수 있는 병이란다. 하지만 만약 제때 구조되지 못했더라면 녀석은 벌써 무지개다리를 건넜을지도 모른다. 피부염으로 털이 빠지면 체온 조절이 힘들기 때문이다.

길고양이의 삶은 고단하다. 치료를 받으면 쉽게 낫는 병도 길고양이에겐 생명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이다. 탈수와 영양실조, 교통사고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학대로 인해 짧은 생을 마감하는 길고양이들도 많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2~3년이다. 10년 넘게 사는 집고양이보다 훨씬 짧다. 길고양이에게 거리는 보금자리인 동시에 매일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전장이다. 그들의 치열한 삶에 한 번 눈길을 주게 되면, 그 전과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가 어려워진다.

강원 춘천 효자마을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차인주씨도 동네 길고양이들과 묘연(猫聯)을 맺은 뒤,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차씨는 아내가 만들어준 고양이 도시락을 들고 매일 배달에 나선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고양이가 있는 자동차 밑으로 도시락을 밀어 넣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초 남짓. 신속하고 정확하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이희섭 감독은 차씨의 이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 ‘고양이 집사’의 한 장면이다.

효자마을엔 길고양이가 유독 많다. 인근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그곳에 살던 길고양이들이 효자마을로 몰려왔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효자마을을 ‘고양이 마을’로 꾸미려고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때문에 애를 먹는다. 바이올린 공방을 운영하는 최종훤씨는 가게 앞에 우두커니 앉은 고양이가 애처로워 문을 열어줬다가 묘연을 맺는다. 정이 들까 봐 고양이에겐 이름도 붙여주지 않았지만, 가게 한쪽에 식탁을 차려두고 고양이에게 밥과 물, 약까지 챙겨준다. 이희섭 감독은 이 고양이에게 ‘레드’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카메라는 효자마을을 지나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경기 성남의 철거촌, 부산 청사포 마을로 향한다.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길고양이들의 사연과 그들을 보살피는 집사들의 목소리가 화면 안에 담긴다. 영화는 관찰자의 시점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인간 중심적인 사고의 허점을 꼬집고 인간과 동물의 지속 가능한 공존을 고민하게 만든다. 배우 임수정이 내레이션을 맡아 이희섭 감독의 반려묘 레니의 시점에서 영화를 이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눈물 훔칠 손수건을 챙겨가도록 하자. 오는 14일 개봉. 전체관람가.

wild37@kukinews.com / 사진=인디스토리 제공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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