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여성이 56년 만에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재심을 청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부산여성의전화, 부산성폭력상담소 등 485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6일 오후 부산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56년 전 오늘, 지난 1964년 5월6일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며 “사건의 피해자는 중상해죄로 6개월여간 구속되었고 유죄판결을 받았다”며 “성폭력 피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건의 피해자는 지난 2018년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보며 여전히 많은 여성이 여성폭력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며 “자신의 사건 해결을 통해 혼자 상처를 끌어안고 있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피해 당사자 A씨는 “너무 억울해서 이 자리에서 56년 만에 섰다”며 “아직도 바뀌지 않은 현실에 분노한다. 사법기관과 사법제도가 변하지 않으면 후세까지 연결된다는 걸 절박하게 생각해 이 자리까지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억울함을 풀고 정당방위로 인정받아 무죄 판결받기를 원한다”며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로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을 고발한 김지은씨의 지지 발언도 대독됐다. 김씨는 “처음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뎌내며 고통 속에 사셨다고 들었다. 더 이상 선생님께서 홀로 고통 속에 계시지 않도록 우리는 손을 잡고 선생님 곁에 굳건히 서 있다”며 피해자를 향한 위로를 건넸다. 이어 “저 역시 선생님 곁에 서겠다”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싸우겠다. 재심이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부산지방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단체에 따르면 64년 5월6일 A씨는 자신을 강간하려는 남성 노모씨에게 저항하다 노씨의 혀에 상해를 입혔다. 이후 노씨는 A씨에게 결혼을 요구하며 협박했다. A씨의 집에 침입해 흉기로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A씨가 노씨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피의자’로 판단해 A씨를 구속했다. A씨는 검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노씨와 결혼할 것을 종용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 또한 가혹했다. 부산지법은 중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내려졌다. 당시 재판부는 “아무리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혀를 끊어 불구의 몸이 되게 한 것은 ‘법이 허용하는 방위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결했다. 노씨에게는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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