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선·화] 화사, 뱀을 두른 마리아

[블·선·화] 화사, 뱀을 두른 마리아

[블·선·화] 화사, 뱀을 두른 마리아

기사승인 2020-07-03 07:30:23
▲ 화사 '마리아' 뮤직비디오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검은 물로 채워진 욕조와 그 안에 잠긴 여인 하나. 노란 경찰 저지선이 쳐지고 그 주위를 수많은 카메라가 에워싼다.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가 내는 셔터 소리가 굉음마냥 요란하다. 그룹 마마무 멤버 화사의 신곡 ‘마리아’(Maria)의 첫 번째 티저 영상 속 장면이다. 지난달 24일 유튜브 마마무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된 이 영상의 부제는 ‘모르테’(morte), ‘죽음’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위한 것이었나. 십자가에 못 박힌 지 3일 만에 부활한 예수처럼 화사도 3일 뒤 되살아난다. 같은 달 27일 공개한 두 번째 티저 영상의 제목은 ‘생명’(vita). 욕조를 채웠던 검은 물은 탄생을 상징하는 우윳빛깔로 바뀌고, 화사는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가소롭다는 듯 의기양양한 미소가 스친다.

화사의 세례명이자 그의 새로운 자아를 나타내는 노래 ‘마리아’에서 화사는 “모두들 미워하느라 애썼네 / 날 무너뜨리면 / 밥이 되나”라고 비웃는다. 자신에게 비수를 꽂던 이들을 향한 일갈이다. 화사는 마마무 멤버로 가요계에 발을 디뎠던 2014년 ‘화사만 없으면 마마무가 예쁜 걸그룹이 됐을 텐데’라며 탈퇴를 요구하는 악플에 시달렸다. 티셔츠 안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사진이 찍혔을 때나 수영복을 연상케 하는 의상으로 무대에 올랐을 땐 그의 몸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 화사 '마리아' 표지 사진

타인이 정의하는대로가 아닌 오직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실력뿐 아니라 외모, 몸매, 옷, 인성 등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로 평가받는 연예인, 특히 여성 아이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화사는 ‘마리아’ 발매 전 소속사 RBW가 공개한 인터뷰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착하게 열심히 잘 살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내다 보니까 제가 뭔가에 물들어가고 변해가고 있고… (중략) ‘이렇게 바보 같이 살면서 상처받을 바에는 나쁜 년이 될까?’ 저 혼자서 그런 갈등을 외롭게 했던 것 같아요.”

‘마리아’는 이 질문에 대한 화사의 답을 보여준다. 고독과 외로움을 씹어 삼키며 그는 강인해졌다. 이 곡 뮤직비디오에선 화사의 죽음과 탄생이 교차한다. 날 선 말들로 영혼을 말살하는 이들을 향한 경고이자, 상처투성이인 허물을 걷어내고 ‘진짜 나’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선언으로도 읽힌다. 이 노래의 가장 감격적인 순간은 “뭐 하러 아등바등해 / 이미 아름다운데”라는 가사와 함께 찾아온다. 화사가 자신과 같은 “이 세상의 모든 마리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실제로 화사는 ‘마리아’ 작업 당시 이 가사를 읽으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위로와 힘을 주는 에너지를 느껴서다. 화사는 ‘마리아’의 주인공이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이 노래가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길 소망한다고 했다.

창세기에서 뱀은 아담과 이브를 죄짓게 한 간교한 동물로 묘사된다. 성모 마리아상은 그런 뱀을 짓밟고 서 있다. 반면 ‘마리아’ 음반 표지에서 화사는 뱀을 자신의 목에 두른 모습이다. 그는 뱀처럼 욕망할 수도, 그러면서 마리아처럼 고결할 수도 있다. 성녀 혹은 악녀로의 구분을 거부하고 나아가 자신을 규정하는 이분법로부터 해방된 존재. 다시 태어난 화사가 반갑다.

wild37@kukinews.com / 사진=RBW 제공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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