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재벌의 지배력 강화 편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죠”
지난 11일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신동화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정부의 ‘제한적 CVC(기업형 벤처캐피탈) 도입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벤처투자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완화된 규제 정책이 자칫 재벌의 경영승계 수단으로 악용될 염려에서다. CVC는 재벌 총수의 지분 늘리기를 허용해준 정부의 악수일까. 신 간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한적 CVC 도입안’에 대한 주요 쟁점을 살펴봤다.
◇일반지주의 벤처투자, CVC란?
CVC는 ‘기업형 벤처캐피탈’(Corporate Venture Capital)의 약자다. 일반적으로 회사 법인이 대주주인 벤처캐피탈(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보통 대기업 집단(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이거나 10조원 이상)이 대주주인 벤처캐피탈을 지칭한다. CVC는 펀드를 조성해 벤처기업 등에 투자한다.
그간 국내 대기업의 벤처 투자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제약이 많았다. 금산분리 원칙이란 은행업으로 대표되는 금융자본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자본이 서로 업종 소유를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그동안 금융과 산업이 결합될 경우 많은 폐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금산분리 정책을 시행해왔다.
지주회사는 벤처기업 투자 시 지분 40% 이상의 자회사로 두거나 5% 미만 지분 투자만 가능했다. 지주회사 체제인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벤처캐피털을 설립해 운영했으며,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대기업들은 계열사 형태로 운영했다.
이번 CVC 추진방안에 따르면 국내 CVC는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자)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 등으로 운영하도록 할 계획이다. 지분 구조는 일반지주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한 완전자회사로 규정했다. 부채 비율은 자기자본 200%를 넘어선 안 된다.
CVC 설립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4가지 방안도 마련했다. 여신 등 타 금융업은 금지하며, 외부자금 조달은 펀드 조성 금액의 최대 40% 내에서 허용한다. 해외 투자는 20%로 제한한다. ▲소식 기업집단 총수일가 지분보유 기업 ▲계열회사 ▲대기업집단 등의 투자는 금지된다.
◇CVC 도입에 경제계 ‘환영’…실효성에는 의문
정부가 CVC 제한적 도입안을 발표하자 먼저 경제계는 반색했다. 한국벤처기업협회와 한국바이오협회 등 12개 벤처 관련 단체는 지난달 30일 입장문을 통해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허용됨으로써 민간 자본의 벤처투자를 더욱 활성화하고 신산업육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어 “대기업이 새로운 기술과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투자를 받는 벤처기업은 대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해 성장기반을 조성함으로써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상생하는 한국형 혁신생태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날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전무는 입장 자료를 통해 “경제계는 그간 엄격하게 금지되던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한 이번 정책결정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정책의 취지가 어려움에 놓여있는 벤처기업의 생존과 미래지향적 벤처창업에 도움을 주려는 것인데, CVC가 제한적으로 허용됨으로써 당초 기대했던 정책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 전무는 “CVC를 지주회사의 완전자회사 형태로 설립하게 한 점, CVC의 부채비율을 200%로 제한한 점, 펀드 조성 시 외부자금을 40%로 제한한 점은 정책의 실효성을 저하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CVC 설립의 자율성 확대, 부채비율 상향, 펀드의 외부자금 비중 확대 등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시민단체 “기업, 경영승계에 악용 우려…부정 내부거래 합법화하는 꼴”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속 신 간사는 CVC 문제점으로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를 콕 짚었다. 다음은 CVC 쟁점에 신 간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정부의 CVC 제한적 허용안이 도입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는 금산분리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입니다. 투자자금 중 외부자금의 비율을 최대 40%로 허용한 점은 특히 우려되는 점이죠. 현재 30대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950조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정부가 밝힌 대로 대기업집단(37개) 일반지주회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해도 약 25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CVC의 투자펀딩에 외부자금을 허용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죠. 마찬가지 이유로 일반지주회사가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했음에도 CVC의 부채비율을 자기자본의 200%까지 허용한 것 또한 타인의 자금을 동원한 재벌의 경제적 지배력 강화를 허용한 것으로 비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부의 CVC 제한적 허용안이 기업 경영승계에 악용될 것이라고 염려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업 내 사익편취나 일감 몰아주기와 비슷한 형태라고 보면 됩니다. 기업의 투자는 수익을 따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일 겁니다. 그러나 일반지주회사의 CVC가 도입되면 합리적 투자가 아닌 계열사인 당사 CVC로 자금이 몰릴 우려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해당 기업에는 손실이 발생하고, 자금을 넣은 투자자에게도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CVC는 공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위가 효과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을지, 시민사회에서도 감시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벤처투자 지분을 지주가 100% 출자해야 한다는 의무 지분율을 만들어 일부 문제를 해소했지만 외부 자금은 산업 자본에 악용될 수 있을 소지도 다분합니다. 기업 유보금만으로 벤처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는 항목도 정부안에 꼭 포함돼야 할 사항입니다.”
-정부의 관련 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규제완화로 만든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에는 또다른 규제완화를 생각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결국 또다른 규제완화 정책을 생각해 내겠죠. 경제위기 해소를 빌미로 이루어진 규제완화는 사회적 양극화 심화 및 부의 독점을 강화한 전례로 이어진 사실이 지속해서 언급되고 있기도 합니다.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모든 국민이 상생하기 위한 경제정책의 일순위는 재벌개혁과 공정경제 구조 확립을 통한 경제력 집중 방지와 사회적 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정부의 일반지주회사 CVC 소유 방침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며, 설령 도입된다고 해도 관련 법률 조항 위반시 엄격한 과징금과 벌칙을 부과하도록 하여 금산분리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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