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최악’이란 평가를 받아왔던 20대 국회. 그 전철를 밟지 않겠다며 너도나도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한지 3개월 가까이 지났다. 오는 29일이면 21대 국회가 개원한지 3달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일하는 국회’의 모습은커녕 ‘완성된 국회’의 모습조차 국민들은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24일 국회는 485조원에 달하는 지난해 국가재정이 적합하게 쓰였는지, 낭비된 구석은 없는지를 검사하는 ‘결산국회’를 열었다. 그렇지만 결산국회가 ‘맹탕’이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되가고 있다. 막대한 빚더미에서 조금이나마 세는 돈을 막고 허리띠를 졸라매야하는 시기지만, 정작 막아설 국회가 제 모습을 갖추고 제대로 일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산국회 첫날까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뺀 17개 상임위원회 중 정부부처 등의 예산과 결산을 담당할 소위원회를 구성한 위원회는 여·야 정치권과 국회사무처의 말을 종합하면 총 8곳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마저도 정식으로 소위원회 구성을 완료했다고 국회 홈페이지에 공지한 곳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방위원회 3곳뿐이다.
앞서 8월 임시국회 회기 중 소위구성에 대한 합의나 의결이 이뤄진 상임위는 이들 3곳 외에 기획재정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교육위원회, 외교통상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총 5곳이 전부다. 국회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지난 21일에는 국회 상임위 구성의 뜨거운 감자였던 법제사법위원회가 소위구성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보건복지위원회의 경우 지난달 30일 전체회의를 통해 15명으로 구성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복수차관제를 채택하기로 한 보건복지부 관련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아직 시행되지 않아 제2 법안소위를 구성하진 못했다. 복지부 관련 예산 및 결산에 대한 검토를 주요 업무로 하는 예산결산소위원회 또한 아직 발족하지 못한 상태다.
◇ 정쟁만 남은 국회에 정치권 내부서도 ‘자성’ 성토… 하지만 ‘말’ 뿐
17개 상임위 중 8개 상임위가 아직 소위원회를 통해 관할 부처의 전년도 예산에 대한 결산심사를 하지 못한 상황이다. 심지어 각 상임위별 결산심사를 종합해 본회의에 상정할 결산보고서를 작성해야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결산심사소위원회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여당과 야당 모두 느긋하기만 하다.
심지어 코로나19 재확산 사태로 인한 중첩된 경제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2차 재난지원금 지급, 52일간 이어진 최장기간 장마로 전국 각지가 수마에 휩싸이고 특별재난지역으로 선정되는 등 전국적 수해복구 지원을 위한 ‘4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허리띠를 졸라매기에 앞서 빚만 늘리려는 포퓰리즘적 발언만을 쏟아내는 분위기다.
더구나 내년도 정부예산 편성이 재정당국을 통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상황에서 지역구 예산확보에만 혈안이 됐다는 비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이와 관련 한 국회 관계자는 “정부가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지 않았는지 심사하는 것은 국회 본연의 의무 임에도 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홀대받고 있는 것”이라며 한탄했다.
나아가 이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도, 미래통합당도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스스로가 내놓은 약속조차 지키지 않고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실망감도 내비쳤다. 특히 ‘일하는 국회법’ 통과를 1호 당론으로 정하고 7월까지 통과를 약속했던 민주당을 향해 날을 세웠다. 말만 앞세우고 당리당략에 따라 언제든 약속을 깨는 모습이 과거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한 초선의원 또한 일부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의원은 “상임위나 여러 회의들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다만 워낙 수해와 코로나19 위기로 엄중한 상황이다 보니 (소위 구성 등이) 늦어지는 것”이라면서도 “계속 정쟁만 해선 안 된다. 일하는 국회의원의 모습 보여주기 위해 회의를 자주 열고 하나씩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 야당 초선의원은 여당의 일방적 국회운영을 문제로 거론했다. 그는 “일하는 국회는 여당 혼자 마음대로 일하는 국회가 아니라 여야가 함께 일하는 국회가 돼야한다. 협치가 이뤄져야한다. 하지만 절대의석을 가진만큼 협치를 위한 손을 내밀어야 할 여당이 야당을 무시하고 정쟁을 일삼는다. 이대로는 일하는 국회가 만들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여당에서 말하는 일하는 국회법의 실체는 여당 마음대로 하는 법이지만, 그마저도 소위는 반드시 구성해 소위에서 법안심사 등을 하도록 돼 있다. 그 얘긴 지금의 국회는 여당이 만들고 지키겠다는 국회법조차 안 지켜지는 곳이란 얘기”라면서 “야당도 잘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래서는 국민들을 볼 낯이 없다. 바뀌어야한다”고 가슴을 치기도 했다.
한편 앞서 민주당이 7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던 ‘일하는 국회법’이 처리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8월 결산국회는커녕 9월 정기국회에서도 법안처리를 위한 야당과의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 일정에 대한 원내대표 간 회동 등에서도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당내 사전 논의조차 멈춘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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