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리-광희
前 tvN ‘수미네 반찬’ 선후배. ‘수미네 반찬’ 3기 수강생 광희와 4기 수강생 박세리. 기수로는 선후배 관계인 두 사람이 제대로 맞붙은 건 E채널 ‘노는 언니’에서였다. 초대 손님으로 나온 광희가 박세리에게 “‘수미네 반찬’ 후배시네”라고 기선제압(?)을 시도하자 박세리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수미네 반찬’이야, ‘노는 언니’야?” 박세리의 KO 승.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대가는 혹독했다. 광희는 박세리에게 망고 씨를 발라 달라고 했다가 “씨 발라? 씨 발르냐고(바르냐고)”라는 대답을 듣고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박세리는 참지 않는다. 서열이 중요하니 각자 나이를 말하자던 유세윤을 눈빛만으로 제압하고, 장성규가 야자타임을 제안하자 “나 그거 되게 싫어한다”는 말로 상황을 정리했다. 나이로 서열을 가르고, ‘선 넘는 캐릭터’로 상대의 사생활을 캐내는 것은 남성 중심 예능의 낡은 문법이다. 아직도 이것이 유효하다고 믿는 예능인·PD들은 박세리가 했던 다음의 말을 새겨듣길. “룰을 모르는구나? 남자 끼는 거 안 좋아해.”
■ 박세리-‘노는 언니’들
국내 첫 여성 스포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주인공들. 박세리는 ‘노는 언니’ 제작발표회에서 “여자 선수들은 왜 (예능에) 노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며“운동선수들로, 특히 여자 선수로만 구성된 게 특별하고 취지가 굉장히 좋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는 언니’는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순간들을 보여준다. 가령, 딸을 낳은 직후 2014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던 남현희의 이야기는, ‘임신 가능성 때문에 기혼인 여성 수영선수는 실업팀과 계약 자체가 어렵다’는 정유인의 말로 이어지며 운동계 ‘유리천장’을 짚어낸다. 월경 도중 훈련하며 겪는 어려움에 관한 대화는 여성 선수들의 고충과 노력을 보여줄 뿐 아니라, 방송에서 암묵적인 금기어가 됐던 ‘월경’을 화두로 던졌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특히 박세리는 다른 출연자에게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내거나 불타는 승부욕으로 예능적 재미를 만드는 등 프로그램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영혼의 ‘먹방’ 메이트. ‘나 혼자 산다’에서 김민경이 “(메뉴판에) 1~2분이라고 돼 있었거든요? 그럼 1인분이잖아요”라고 말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공감한 이는 박세리였다. 로제 떡볶이와 국물 떡볶이 중 어느 것을 먹을지 고민하는 김민경의 모습을 보며 “둘 다”라고 말한 이도 박세리였다. 둘은 대식가다. 박세리의 장보기 지론은 “먹을 것은 다 커야 한다”이고, 아침 식사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메뉴는 고기다. 2년째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도가 높은 과일은 아침에 먹으니 괜찮고, 한 번 얼렸다가 데운 피자는 열량이 낮아져 괜찮으며, 치즈는 뼈에 이롭기에 괜찮다고 말한다. 마른 몸이 미(美)의 기준인 사회에서, 먹는 행위는 늘 죄책감을 수반했고 식욕이 큰 여성은 늘 놀림거리가 됐다. 그러나 진심으로 음식을 즐기는 박세리와 김민경의 모습은 여성 시청자를 다이어트에서 해방시키고, 나아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만든다.
■ 박세리-박찬호
IMF 시절의 국민 영웅, ‘박남매’. 지금은 ‘TMT’(투 머치 토커·수다쟁이)로 밈(meme)화 됐지만, 박찬호는 박세리와 함께 ‘두유 노 클럽’(외국인에게 한국을 아느냐고 물을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한국의 유명인 명단)의 조상님으로 꼽을 만한 인물이다.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로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던 시기, 맨발의 박세리와 박찬호의 하이킥은 국민에게 희망이자 용기였다. ‘박남매’의 예능 동반 출연은 지난 8월 SBS ‘정글의 법칙’을 통해 처음 성사됐다. 여기서 한 가지 비화. 박찬호는 박세리의 출연 소식을 듣고 ‘정글의 법칙’ 캐스팅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유는 “보호자가 필요하니까”라고. 아무튼, 서해 무인도에서 펼쳐진 모의 재난 상황에서도, 박찬호는 산등선을 뛰어다니며 박세리는 돌덩이를 들어 올리며 출연자들의 끼니를 책임졌다. 가히 ‘국민 박남매’의 위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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