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왜 다시 거리에 나섰을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왜 다시 거리에 나섰을까

기사승인 2020-12-09 05:00:01
▲사진=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로고/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공

[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소비자들이 목숨을 잃고 쓰러져 가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지난 7일 서울 중구의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앞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은 반문했다. 본인들이 겪은 비슷한 참사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간에 드러난 지도 9년이 넘었지만 피해자 고통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연일 사참위 활동기한 연장과 명명백백한 조사를 요구하기에 나섰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합의추진위원회’(추진위)와 시민사회단체들로 이루어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은 국회와 각 정당에 ▲사참위 활동기한 연장 ▲사참위 수사권(특별사법경찰관 권한) 부여 ▲사참위 조사기간 2년 이상 보장 ▲사참위 조사 인원 대폭 확충 ▲사참위 조사기간 중 관련자 공소시효 정지 등의 내용을 담아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을 당장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가습기넷 관계자는 “올해 12월로 마무리되는 특조위 활동기한을 지금 시점에서 마무리하기에는 지금까지 노력해오며 실마리를 잡아가는 진상규명과 피해자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 등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특조위에서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어주기를 기대한다. 활동기한은 연장돼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고 부연했다.

그간(2018년 12월~2020년 12월) 특조위 활동에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관계자는 “지난 3년여간 가습기살균제참사 해결을 위한 의지와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며 “피해자들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 과정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연장과 함께 사참위에 요구하는 사항은 10가지다. ▲정부 법적책임 인정(구제, 입법 부작위 책임 등 특별법 제3조에 명시) ▲구제법체제변경(사망자 일신손해금, 생존자, 유족의 위자료 지원, 중장기적인 의료, 교육, 취업 지원 체계 수립) ▲특별법을 통해 모든 가해기업들과 정부의 통합배상 시스템 구축 ▲특검 의결 ▲국회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특별 대책 위원회 설치 ▲대통령 직속 가습기살균제 참사 특별 대책 기구 총리 직속 TF 설치 ▲여야 지도부 면담 신청 ▲집단 소송제 도입 ▲가해기업 연구용역 금지 ▲국가차원 추모회 추진 등이다.

사참위 연장 필요성에는 기업 불신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사참위는 지난달 13일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소속 직원들이 가습기살균제피해자 온라인 모임에서 피해자를 사칭하고 피해자 및 피해자단체 동향을 파악한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수사요청서를 제출했다. 사참위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가습기살균제참사 발생 이후 사내에 가습기살균제 T/F를 꾸려 국회 국정조사, 검찰 수사, 피해자 및 언론 등에 대응하고 이 과정에서 증거인멸, 증거은닉 등 범죄행위가 이뤄졌다고 내다봤다.

국회도 공감했다. 6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달 2일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사참위 활동 기간 2년 연장 ▲사참위 정원 120→150명 확대 ▲세월호 참사 관련 범죄 공소시효 정지 ▲사참위 사법경찰권(수사권) 부여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다만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 간사인 성일종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달 10일 활동 종료인 만큼 적어도 3∼4개월 전에는 관련 법안을 놓고 여야가 서로 협의를 해왔어야 했다”며 “‘선입선출’ 원칙에 따라 먼저 발의한 법안을 순서대로 심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 달 남겨두고 법안 발의했으니 통과시켜 달라는 것이 말이 되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규명돼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입장이다.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을 쓴 뒤 폐렴 등 폐기능 저하 등의 질환을 앓고 있는 조순미씨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피해자와 사망자 숫자를 보여주고만 끝날 일이 아니다”라면서 “가해기업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늦어진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도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사참위가 여기서 마무리된다면 그간 피해자들의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조씨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SK케미칼, 애경산업, 신세계이마트의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한 판단을 질질 끌던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년에야 솜방망이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데 그치게 된 과정과 배경도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1994년 SK케미칼이 문제의 원료 물질들을 개발한 뒤, 가습기살균제로 쓰이면 안 되는데도 제품으로 만들어져 판매되는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는지도 확인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smk5031@kukinews.com
신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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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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