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영수 기자 = 2020년 호흡기 감염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코로나19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감염질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요즘, 우리에게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호흡기 감염질환이 있다. 바로 ‘백일해’다.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진단이 쉽지 않지만, ‘100일 기침’으로 불릴 정도로 심한 기침을 동반하고 인플루엔자보다 전파력이 높아, 주의가 필요한 호흡기 감염질환 ‘백일해’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봤다.
# 10년째 천식을 앓고 있는 박모씨(여· 60대)는 올해 심한 기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처음에는 천식이 심해진 것으로 생각했지만, 좀처럼 낫지 않아 ‘혹시 코로나19가 아닐까?’ 하는 우려에 병원을 찾았다. 1인 병실에 격리된 박모씨의 진단명은 뜻밖에도 ‘백일해’였다. 박모씨는 영유아 질병으로만 알았던 백일해에 걸렸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박모씨와 같이 백일해를 영유아 질환이나 국내에서 퇴치된 질환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백일해는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을 위협하는 주요 질환 중 하나로, 신생아 감염은 집중 치료에도 치명률이 4%에 이르고 있고, 감염 시 폐렴, 경련, 뇌병증 등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백일해 발생 비율, 영아에서 고령으로 변화 중
최근에는 백일해 백신이 보급화 된 미국, 영국 등에서도 집단 발생이 반복되고 있는데, 청소년 및 성인에서의 면역력 감소에 따른 백일해 발병 위험 증가가 영유아로의 전파로 이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경우 2001~2003년 사이 발생한 백일해는 대부분 1세 이하, 특히 6개월 이하 영아가 다수를 차지했으나, 이후 점차 호발 연령이 높아져, 2004-2005년 사이 보고 된 증례의 60%가 11세 이상이었다. 백신에 의한 면역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도 고령층의 백일해 발생 비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국내 발생한 백일해 환자 중 60대 이상 고령자의 비율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올해는 영유아보다도 많은 환자가 60대 이상에서 발생해 전 연령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1
65세 이상 고령층은 연령이 더 높을수록 백일해에 더욱 치명적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45세 이상의 백일해 환자 26만309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45~64세, 65~74세, 75세 이상 그룹간 백일해의 발병률은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으나 백일해로 인한 입원은 45세~64세 그룹 대비 65~74세, 75세 이상 그룹에서 4~6배가량 높게 나타나 고령층에서 백일해 감염 시 입원으로 이어지는 심각성이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령자와 기저질환자에서 더 위험한 백일해… 천식, COPD 환자 주의해야
기저질환자 역시 백일해 고위험군에 꼽힌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7개주에서 백일해로 입원한 21세 이상 성인 환자 중 87%가 당뇨,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하나 이상의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1990년부터 2004년, 미국에서 백일해로 인한 사망자는 전원 기저질환을 앓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저질환자에서 백일해의 치명도가 건강한 성인 대비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기저질환 중 특히 주의가 필요한 것은 천식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45세 이상 성인 26만3094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천식 환자가 백일해에 감염될 위험도는 일반인에 비해 1.6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미국에서 11세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한 후향적 코호트 연구에서도 2만4902명의 백일해 환자 중 천식 환자의 상대적 위험도가 일반인 대비 3.96배,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의 위험도는 2.5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일해로 인한 입원률 조사에서도 COPD환자는 전체 성인 입원 환자의 19%를 차지해, 일반적인 미국 성인 인구 중 COPD 환자 비율(6.4%)대비 높게 나타나 백일해 위험 노출 가능성이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천식이 발작성 기침, 기침으로 인한 불면증 등 백일해 증상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998년 캐나다에서 백일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천식환자들은 평균 4주보다 1주 더 길게 발작성 기침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불면증 일수도 평균 20일 대비 6일 더 많이 나타났다.
추은주 부천 순천향대학교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일해는 영유아뿐만 아니라 고령자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천식, 당뇨 등의 기저질환자에서도 위험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백일해는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병원 방문이 늦어지는 등의 문제로 진단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성인에서의 질환에 대한 경각심과 예방접종률이 낮은 것 역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백신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본인의 건강은 물론 가족 모두의 건강을 위해 이번 독감 접종 시 백일해를 예방할 수 있는 Tdap 백신도 함께 접종하길 권고한다. 특히,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등 백일해의 고위험군은 합병증 발생, 입원률 증가, 삶의 질 저하 등의 우려도 높은 만큼 반드시 접종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내에서 만 65세 이상 고령층이 접종할 수 있는 Tdap 백신은 GSK의 부스트릭스가 있다. 부스트릭스는 만 10세 이상의 청소년 및 성인, 만 65세 이상 에서도 접종할 수 있는 Tdap 백신으로 디프테리아, 파상풍 및 백일해를 예방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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