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등은 22일 오후 2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식을 진행했다. 분수대 인근에서는 유가족과 시민 20여명이 2m씩 거리두기를 하며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수사 시작하고 진상규명 책임져라’,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군 등 세월호 참사 관련 정부 기록 제한 없이 공개하라’ 등의 피켓을 들었다.
삭발에는 ‘예은아빠’ 유경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호성엄마’ 정부자씨, ‘순범엄마’ 최지영씨, ‘동수아빠’ 정성욱씨, ‘시연엄마’ 윤경희씨 등 5명의 유가족과 최헌국 목사가 참여했다.
삭발에 참여한 이들은 까만 천을 두르고 의자에 앉았다. 까만 천에는 세월호 참사의 상징인 ‘노란 리본’이 새겨져 있었다. 이날 윤씨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잘랐다. 삭발하며 울음을 참던 정부자씨는 성명서를 낭독하기 전 “숨을 쉴 수가 없다”며 한맺힌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특수단)의 수사 결과를 규탄했다. 특수단은 지난 19일 1년2개월에 걸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제기된 17개 혐의 중 13건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처리됐다. 유가족 사찰과 고(故) 임경빈군 구조 방기 의혹도 ‘혐의없음’으로 결론 났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특수단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파편화시킴으로써 진상규명을 통해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를 염원했던 피해자와 시민의 바람을 외면하고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답을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청와대·정보기관·군 등 권력기관이 제한 없이 조사와 수사에 임하도록 지시하고 책임지겠다는 것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표명하고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언에 나선 유 집행위원장은 “지난 4년 동안 대통령의 의지가 가족 못지않게 강하니 반드시 (진상규명을) 하실 것이라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9월 짧은 농성을 했을 때도 곧 (대통령이) 의지 표명을 하실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며 “그 결과가 특수단의 수사였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이 문재인 정부에서 삭발하시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우리 아이들은 문재인 정부를 위해서 희생된 게 아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민주당 정권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유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며 “지금 당장 성역 없는 진상규명 약속 이행을 위한 대통령의 권한, 정부의 권한을 사용해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유가족은 특수단의 수사 결과를 포함, 정부의 세월호 관련 수사·조사 결과가 진상규명을 이루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4년부터 현재까지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감사원 조사, 해양안전심판원 조사,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세월호 특수단 등 총 8차례 수사·조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논란이 항상 따라붙었다. 2014년 검찰 수사 당시에는 구조 책임자였던 해양경찰(해경)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파견됐던 김경일 전 123정장에게만 실형이 선고됐다. 수사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감사원 조사도 마찬가지다.
유가족의 노력으로 특조위와 사참위 등이 세워졌지만, 제대로 된 수사 권한은 갖지 못했다. 국가 기관의 비협조로 특조위 등은 조사에 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해경, 국정원 등은 특조위에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유가족과 특조위원 등의 단식 투쟁에도 1기 특조위는 활동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강제 해산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세월호 참사 관련 정부의 자료 제출이 협조적으로 변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사참위 관계자는 “특조위 시절에는 거의 응대 자체가 되지 않았다. 각 기관으로부터 협조를 받지 못했다”면서 “사참위에서는 자료를 받을 수 있지만 조금 더 적극적인 협조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가족이 기자회견에서 지적한 세월호 특수단은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을 대다수 무혐의 처분했다. 2014년 당시 처벌받지 않은 해경 고위직과 특조위 조사 방해 혐의를 받는 정부 관계자 등 일부만 기소했다. 특히 피의자의 진술만을 근거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반발이 나오는 상황이다.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제1소위원장을 지낸 권영빈 변호사는 “8번이라는 숫자를 보면 세월호 관련 수사·조사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특조위는 성과를 내기도 전에 강제해산 당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관련 조사는 8번이나 해야 할 만큼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었다”며 “수사를 반복하면서 이전 부실수사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월호 유가족은 지난달부터 청와대 앞에서 “성역 없는 진상규명 약속을 이행해달라”며 노숙 농성을 진행 중이다. 오는 23일에는 청와대 앞 피케팅 등 노숙농성에 연대하는 집중행동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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