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동운 기자 = 3800만명의 국민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리는 실손보험 상품이 잇달아 판매가 중단되고 있습니다. 이번달 초 미래에셋생명이 ‘착한 실손보험’이라고 불리는 3세대 실손보험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또한 ‘4세대 실손보험’ 판매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 실손보험을 판매하는 생명보험사들은 17곳 중 절반 이하인 8곳에 불과하고, 손해보험사는 13곳 중 10곳으로 줄어든 상황이죠.
실손보험 판매 중단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지난 2011년 라이나생명을 시작으로 ▲오렌지라이프생명 ▲AIA생명 ▲푸본현대생명 ▲KDB생명 ▲DB생명 등이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손보사 중에서는 ▲AXA손보 ▲에이스손보 ▲AIG손보들이 실손보험을 취급하지 않고 있죠.
일반적으로 보험상품들은 ‘규모의 경제’를 따라가는 가장 대표적인 금융상품으로 불립니다. 가입자가 많아지는 만큼 지불하는 보험금도 늘어나지만, 월납보험료가 더 커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보험사들은 적극적인 대면영업을 통해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모습을 보이죠. 하지만 실손보험만큼은 다릅니다. 오히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늘어나기 때문에 보험의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현재 실손보험은 누적 적자가 어마어마한 상황입니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손해보험사 전체 실손보험 발생손해액, 즉 보험금 등의 지출이 10조1017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료 가운데 사업운영비를 떼고 보험금 지급에 쓸 수 있는 위험보험료는 7조7709억원에 그쳐 보험사 손실액이 2조3608억원에 달했죠. 생보사의 경우 집계가 된 것은 아닙니다만, 생보업계에서는 약 6000억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 해에만 실손보험으로 인한 누적 적자는 3조원에 달하는 셈입니다.
통상 보험업계에서는 보험 상품의 유지를 위한 적정 손해율을 80%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으로부터 월 1만원의 보험료를 받는다면 운영·유지비와 고객에게 지불하는 보험금를 모두 합쳐 매달 약 8000원 정도가 나가야 보험이 계속 유지가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실손보험의 경우 130.5%를 넘어선 상황입니다. 사업운영비 몫까지 포함한 전체 보험료를 기준으로 한 손해율이 위험손해율보다 통상 21∼22% 낮은 점을 고려한다면, 보험사들은 실손보험료 1만원을 받아 매달 1만1000원을 고객들에게 지불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보험사들은 잇달아 실손보험 상품들의 매월 납입 보험료를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실손보험이 최초로 나왔던 ‘1세대 실손보험(구실손)’의 경우 최저 15%에서 최대 19%까지 올리기로 했죠. 구실손의 경우 3∼5년 주기로 보험료가 갱신되다 보니 연령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최대 200% 가까운 보험료를 지불해야 하는 ‘보험료 폭탄’을 맞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실손보험 판매를 중지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치료비가 비싼 일부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험금 청구가 과도하게 이뤄진다고 지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손보사들이 지난해 근골격계 질환으로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2조9902억원이나 됐는데요, 이 중 ‘비급여 도수 치료’로 인해 2017년(1조9868억원) 대비 50.5% 증가했습니다. 또한 백내장에 지급한 보험금은 4101억원으로 2017년보다 365.4% 급증했으며, 피부질환 보험금도 같은기간 127.6% 늘어난 1287억원으로 집계됐죠.
이처럼 실손보험 상품의 손해율 누적은 보험사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비급여 치료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각계에서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를 풀기 위한 첫 걸음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라는 제도인데, 지난해의 경우 국회에 상정됐지만 끝내 문턱을 넘지 못했죠. 올해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만큼,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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