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강한결 기자 = 중국산 게임이 한국시장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 소위 ‘짝퉁게임’을 찍어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뛰어난 퀼리티를 내세운 중국산 게임의 대규모 러시에 국내 게임업계의 고민이 깊어지는 중이다. 반면 한국 게임은 '한한령'에 막혀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중국 정부가 게임 판호(허가증) 발급을 위한 새로운 제도인 '게임 심사 채점제(판호 채점제)'를 이달부터 시행하면서, 중국시장 진출장벽이 더욱 높아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해외시장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는 지난 1일부터 판호 채점제를 시행 중이다. 관념 지향, 원조 창작, 제작 품질, 문화적 의미, 개발 정도 등 5가지 항목을 채점한 점수를 기준으로 판호를 발급하는 제도다. 이 중 3점 이상을 받은 게임만 판호가 발급되며 한 항목이라도 0점을 받게 되면 판호 발급이 반려된다.
논란이 되는 항목은 ‘관념 지향’과 ‘문화적 의미’다.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및 중화 우수 문화 전파 여부 등을 판호 발급 기준으로 삼는다는 내용인데, 게임 내 사상과 문화 표현 등을 중국 정부 마음대로 통제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이제 '친중' 성향 게임이 아니면 판호를 받을 수 없겠다”는 자조적인 반응도 나온다.
중국 당국은 2017년 3월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경제 보복의 일환으로 한국산 게임에 판호를 내주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한국은 3년 넘게 증국에 신작 게임을 유통할 수 없었다. 지난해 연말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가 3년 만에 판호를 발급받으면서,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한한령(한류 제한령)’이 풀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퍼졌다. 하지만 이후 인디게임인 ‘룸즈’를 제외하면, 사실상 판호를 받은 한국게임은 전무하다.
반면 중국게임은 한국에서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키워가고 있다. '기적의 검'과 '라이즈오브킹덤즈'는 2019년부터 지금까지 구글 플레이 최다 매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원펀맨: 최강의 남자', '삼국지 전략판' 등 신작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게임이 한국 게임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걱정은 201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미호요의 ‘원신’이 출시된 이후 추상적이던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3인칭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를 표방한 이 게임은 모바일은 물론이고 PC,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스위치(발매일 미공개)에서도 구동이 가능하다. 크로스 플랫폼도 지원한다. 원신은 뛰어난 그래픽과 수준급 게임성을 바탕으로 한국 게이머들에게도 많은 호평을 받았다.
실제 미호요는 원신을 개발하는데 500명의 개발인력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 제작에도 3년 이상이 소요됐다. 많은 인력과 자본이 투입된 만큼 높은 퀄리티의 작품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모바일 통계 어플리케이션 앱애니에 따르면 원신은 2021년 1분기 소비자 지출 2위를 기록하며 금전적으로도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중견게임사에 근무하는 한 개발자는 “한국 게임사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대형 게임사를 중심으로 확률형 아이템 등과 연관된 일련의 부정이슈가 터지면서, 한국 게임산업 전반에 대한 국내 이용자의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며 “반면 중국 게임은 양과 질 양쪽을 앞세워 국내 이용자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까지 ‘중국게임은 저질’이라는 인식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의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중국 게임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게임 해외 매출액은 지난해 1분기 37억8100만달러(약 4조1950억원)에서 올해 1분기 40억6400만달러(약 4조5090억원)로 3000억원 이상 늘었다.
과거 대형게임사에 몸 담았던 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국내 게임사들이 양질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야 한다”면서도 “이는 기본적으로 수반돼야 하는 것이고, 이제는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한국 게임산업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게임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대응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관계자는 "내수시장으로는 한계가 있고, 한한령만 풀린다면 중국시장은 분명히 매력적"이라면서도 "다만 중국이 문을 언제 열지 모르는 상황에서 베트남, 홍콩, 태국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시도도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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