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대학 내 여성주의 미래는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대학 내 여성주의 미래는 

기사승인 2021-11-03 06:20:02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교정에서 대학 내 백래시를 주제로 한 공동행동이 진행됐다.   사진=이소연 기자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총여학생회와 후신 단체들이 각 대학에서 사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성주의에 대한 보복성 공격(백래시)으로 인한 쇠퇴라고 지적했다.
  
2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교정에서 대학 내 백래시를 주제로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페미니스트 총궐기 : 부활)’ 공동행동이 열렸다. 중앙대 성평등위원회 ‘뿌리’ 폐지에 반대하는 중앙대 학생 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까만 옷을 맞춰 입었다. 한 손에는 빨간 장미를 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거리두기를 하고 페이스쉴드를 착용했다. 이들은 “성평위 폐지는 학생사회 재난이다” “익명에 숨어드는 혐오자들 반성하라” “우리들은 끝까지 뽑히지 않는다”는 구호를 외쳤다. 

공동행동 진행요원들은 ‘불법 촬영 금지’라는 피켓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사진 찍지 말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주최 측은 “참여자들의 안전을 지키며 진행하겠다. 불법촬영과 혐오 발언에 대해 수집, 대응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교정에서 대학 내 백래시를 주제로 한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사진=이소연 기자 

뿌리는 지난달 8일 폐지됐다. 앞서 대학 익명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익명의 한 학우가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대한 연서명’을 제안했다. 300명이 참여했다. 뿌리가 여성주의 기반이라는 이유에서다. 중앙대 학생 대표자 회의 기구인 확대운영위원회는 참석 인원 101명 중 59명 찬성(58.41%)으로 성평등위원회 폐지를 가결했다. 투표 과정에서 성평등위원회 측에는 발언 기회를 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뿌리는 이날 성명문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팽배한 성평등에 대한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모였다”며 “성평등위원회가 어떠한 토론과 숙의 과정 없이 오로지 다수주의에 입각해 무력하게 폐지된 것은 성차별적인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도 성평등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됐어도 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사람들까지 없앨 수는 없음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성명문을 읽다 목이 메어 한동안 발언을 이어가지 못했다.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뿌리 폐지를 규탄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김민지 중앙대학교 인문대학 인권위원장은 “성폭력위원회 폐지 안건 발의자에게 성폭력 피해 신고창구, 가다실 9가 접종, 운동 챌린지, 정혈용품 지원사업, 여성용 사각팬티 중 무엇이 ‘급진적’이었는지 묻고 싶다”며 “자신들이 보고 싶은 사업들만 보고 비난을 시작해 나머지 전체 활동을 부정했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교정에서 대학 내 백래시를 주제로 한 공동행동이 진행됐다.   사진=이소연 기자 

중앙대뿐만이 아니다. 지난 1980년대 설립됐던 대학 내 총여학생회들이 사라지고 있다. 2013년 건국대, 2015년 홍익대, 2018년 성균관대·동국대, 2019년 연세대 등에서 총여학생회가 문을 닫았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총여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해 폐지 여론이 힘을 받은 대학도 있다. 

명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대학에서는 성평등위원회, 반성폭력위원회 등 대안기구를 통해 총여학생회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백래시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17년 한양대학교에서는 총여학생회장 후보가 성희롱 등 사이버폭력에 시달렸다.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에 따르면 에브리타임에서 삭제되지 않은 혐오성 게시물 550개 중 47%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낙인과 비방, 여성혐오가 포함됐다. 지난해 4월부터 7월까지 약 3개월간 20여개 대학의 에브리타임 내 혐오 표현을 수집한 결과다.

윤김지영 창원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성평등위원회가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문을 닫았다. 사회의 다수자가 언제든지 소수자의 인권이나 권리를 짓밟을 수 있다는 문제”라며 “에브리타임 내 남성우월주의 목소리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도 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학 내 여성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교수·연구자·활동가 등과 함께 연대해야 한다. 여성주의를 논의하는 공론장이 더 많이 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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