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같이 있는 사진 있어야"…'스토킹 살인' 피해자 유족 "기막혀" 울분

경찰 "같이 있는 사진 있어야"…'스토킹 살인' 피해자 유족 "기막혀" 울분

피의자 35세 김병찬 신상공개
유족 "허술한 피해자 보호체계·경찰 무관심 속에 죽어가"

기사승인 2021-11-25 06:29:44
스토킹.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스토킹 피해를 신고하고 신변 보호받던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병찬 씨(35)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같은 날 숨진 피해자 A씨의 유족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부실한 치안 시스템으로 인해 스토커가 피해자를 죽일 수 있었다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24일 A씨의 남동생이라고 밝힌 청원인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계획적이고 잔인한 스토킹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고인과 유족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란 제목의 글이 공개됐다. 

피해자의 유족은 김씨의 엄벌을 요구했다. 신변 보호자에 대한 부실한 대응과 치안 시스템의 허술함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이와 관련된 경찰 책임자를 처벌해달라고 촉구했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스토킹 피해자 보호 체계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 

청원인은 "저희 누나는 살고자 발버둥쳤으나 허술한 피해자 보호체계와 경찰의 무관심 속에 죽어갔다"며 "누나의 지인들에 따르면 112로 신고했을 때 아래와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고 한다"고 전했다. 

청원인에 따르면 A씨 지난 7일 김씨로부터 협박을 받고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작성한 뒤 7~8일은 임시보호소에서, 9~14일 지인의 집에서 머물며 김씨를 피했다. 9일에는 김씨가 A씨의 직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A씨는 갤럭시 SOS 메시지 보내기 기능을 활용해 회사에 있는 지인에게 요청을 했고 지인들은 위치 정보로 위치를 파악해 김씨와 A씨를 분리시켰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것.

그러면서 A씨의 지인들을 인용해 112에 신고했을 때 상황을 전했다. 피해자는 당시 112에 전화를 걸어 경찰에 "임시보호소에 있던 OOO인데 가해자가 회사 앞으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112 응답자인 경찰은 "같이 있느냐"고 물었고 A씨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경찰은 다시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고 묻고 A씨는 "아니요,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러자 경찰은 "증거가 없으면 도와드릴 수 없다. 같이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어야 도와드릴 수 있다"고 했다. 

청원인은 "정말 기가 막힌다. 위협을 가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피해자가 동영상을 찍을 수 있었을까? 셀카라도 한 번 찍자고 해야 할까"라며 "이게 대한민국 피해자 보호 체계의 현실. 112 응답자도 '남'이니까 저렇게 대충하고 넘어갔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가 직장으로 찾아온 날 A씨는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신청 승인이 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러나 담당 수사관은 다음날 김씨를 경찰서로 불러 접근금지 대상임을 설명하는 게 전부였다고 청원인은 설명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인은 "접근금지 명령만 나오면 뭐하나. 가해자(살인자)들을 불러서 접근금지 대상자임을 설명해주면 '아 그렇군요. 이제 근처에도 안가야겠네요'라고 하느냐"면서 "실질적인 보호 인력이 동원되지 않는 접근금지 명령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원인에 따르면 11일 김씨가 또다시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A씨는 전화를 받지 않고 담당수사관에게 전화를 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해당 수사관은 김씨와 통화를 한 뒤 A씨에게 "번호를 지우면서 잘못 눌렀다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되물었다. 

청원인은 "경찰이 계속해서 스토킹의 '증거'를 요청하는데 9일 100m 이내 접근금지, 정보통신 이용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를 내려진 후 발생한 일인데 이런게 증거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 증거인가"라며 "흉기로 공격당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서 제출해야 증거가 되는 것일까"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이같은 부실 대응과 잘못된 위치를 알린 신변보호자용 스마트워치로 인해 피해자가 무참히 살해당했다며 가슴 아파했다.  

청원인은 "누나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한 치밀하고 잔인한 살인마에게 희롱당하다 흉기에 수십차례 찔려 꽃다운 나이에 비참하게 살해당했다"며 "괴롭힘을 당하는 과정에서 누나는 살기위해 경찰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고 나라가 제공한 피해자 보호제도를 굳게 신뢰했다"고 말했다. 

이어 "생전 누나는 걱정해주는 친구들에게 경찰로부터 스마트워치를 받고 '나에게는 만능시계가 있다' '경찰청이 바로 코 앞에 있어서 신이 도우신 것 같다'고 얘기했다"며 "그러나 허울뿐인 피해자 보호 제도는 누나를 살인범으로 전혀 보호해주지 못했고 누나는 차가운 복도에서 고통 속에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비통해했다. 

'스토킹 살해' 김병찬. 사진=경찰청 제공
이를 본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해당 청원을 공유하며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쏟아졌다. 현재 이 청원글은 25일 오전 6시15분 기준 1만3750명의 동의를 얻었다. 

누리꾼들은 "경찰의 대응 태도가 정말 화난다" "사람 죽게 해놓고 범죄예방위해 신상공개 결정했다?" "경찰은 이번 기회에 매뉴얼을 바꿔야 한다" "피해자한테 바로 출동했어야지 같이 있는 사진이 있어야 한다니 말이 되냐" "(스토커가) 무서워 죽겠는데 같이 사진 찍다니 이게 무슨 말이냐" 등 반응을 보였다. 

유족의 청원글이 공개된 이날 서울경찰청은 심의위원회를 열고 "신상 공개로 얻는 범죄예방 효과 등 공공의 이익을 고려했다"며 김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위원회는 "미리 흉기를 준비해 피해자 주거지에 찾아가 잔인하게 살해했다"며 "범행 일체를 시인하고 감식 결과와 폐쇄회로TV(CCTV) 영상 등 충분한 증거가 확보돼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 19일 11시30분께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A씨를 찾아가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 혐의로 22일 구속됐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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