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떠올리며 학교에서 하지 못했던 다양한 체험과 새로운 이벤트를 기대하는 아이들이 많다. 준비자 입장인 엄마에겐 가장 정신없고 바쁜 시간이다. 그런 '공포의 겨울방학'이 시작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4번째 맞는 겨울방학이다.
방학 몇 주 전부터 현재까지 동네 엄마들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 '방학 때 뭐하고 놀아주지' '뭘 먹이지'이다. 아이를 한 명 둔 엄마나 다자녀 엄마나 똑같은 고민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저학년, 영유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세 아이를 둔 엄마이다 보니 각각 아이들에 맞춰 방학에 할 활동을 준비하는 건 쉽지 않았다.
사춘기를 향해 달려가는 첫째는 친구와의 만남이 아니면 잘 움직이지 않으려 했고, 둘째는 방학동안 다양한 이벤트를 보거나 활동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을 가길 바랐다. 놀이용 점토 하나를 주면 수십분을 노는 막내는 계속해서 새로운 놀잇감을 손에 쥐여줘야 했다. 조금이라도 타이밍을 잘 못 맞추면 "심심해" "재미없어" "오늘은 안 나가?" 요구가 쏟아졌다. 세 아이의 겨울방학이 겹친 일주일은 올겨울 중 가장 힘든 한 주였다.
코로나19 상황이 벌어진 지난 2년여간 방학은 이전보다 더 공포스럽게 변했다. 해외 여행을 떠나거나 전국 일주, 박물관·미술관 탐방을 떠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코로나 사태 2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코로나 확산 사태로 아이들과 해외 나갈 엄두도 못냈고, 큰마음 먹고 예약했던 제주 여행도 오미크론 변이 등장과 함께 취소했다. 시설 체험의 경우 코로나 감염 우려로 인해 입장 인원이 제한되거나 체험 자체가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다보니 예약 가능일에 클릭 전쟁이 벌어졌다. 왕년에 콘서트 티켓팅 좀 해본 실력도 여기선 통하지 않았다. 유아 체험실 예약 앞에선 번번이 좌절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집 앞 놀이터라도 자주 나가볼까 해도 추운 날씨 탓에 아이들과 문밖에 나서는 것부터 용기가 필요했다. 자칫 감기라도 걸리면 요즘 같은 시국에 재앙이 따로 없다. 생후 14개월인 조카는 일주일간의 어린이집 방학 동안 현관문 앞에서 신발로 문을 두드리며 밖에 나가자고 우는 통에 이를 말리느라 엄마가 꽤 고생했다고 한다. 물론 자녀가 놀이터에서 놀아 본(?) 초등 고학년 이상쯤 되면 '엄마랑 놀이터 나갈래?'란 말에 돌아오는 건 콧방귀뿐일 것이다.
세 아이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활동을 위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미술·과학·요리활동 등 놀이키트를 구매하기도 했다. 보따리장수처럼 아이들이 심심해할 때마다 하나씩 놀이키트를 꺼냈다. 놀잇감은 해결책이 되진 않았다. 분명 활동은 한 시간 내에 끝났는데 정리 시간은 배가 걸렸다. 돌아서면 치우고 돌아서면 치우는 일이 반복돼 몸살이 날 것 같았다.
아이들과 방학을 보내는 다른 엄마들의 반응도 대체로 비슷하다.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지인들과의 단톡방에는 매일같이 "언제 개학하려나" "돌밥 돌밥(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차린다) 지친다" "방학은 지옥"이란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런저런 비슷한 푸념들을 늘어놓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났다.
며칠 전 눈이 펑펑 내린 날. 오랜만에 많은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왔다. 결혼 전만 해도 눈이 오면 길이 질퍽거리고 미끄러워져 싫었는데..코로나 사태 이후론 눈은 너무나 반가운 존재가 됐다. 오랜만에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만난 아이들은 함박눈을 맞으며 활짝 웃었다.
문득 코로나로 학교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대면 수업도,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도 제대로 못 해본 아이들이 방학마저 많은 시간을 집, 학원에서 보내는게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으로 가득 찬 일정을 볼 때마다 그저 힘들어 '대체 방학이 언제 끝날까'라고 생각했던 게 내심 미안해졌다.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눈 내리던 날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도 말했다. "우리 아이들 정말 불쌍하다" "올해는 코로나 없이 매일 학교에 나가 선생님, 친구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