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 엄마는 왜 수학책을 폈을까 [놀이터통신]

‘수포자’ 엄마는 왜 수학책을 폈을까 [놀이터통신]

중학생 23%, 고등학생 32% “나는 수포자”
“수박 겉핥기식 문제 풀이 훈련, 고학년 교육과정 이수 어려워”

기사승인 2022-07-11 06:00:02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했다. 연합뉴스

한국계 수학자 최초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 ‘수학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았습니다. 

허 교수의 수상 소식은 반갑지만 동시에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다룬 보도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니 부모 입장에선 속이 쓰립니다. 문·이과 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 이후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에 따라 수학에 강점을 지닌 이과생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가 된 상황에선 더욱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중·고등학생들의 수학 기초학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2021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내용에 따르면 수학 기초학력이 미달인 ‘1수준’인 학생 비율은 중학교 3학년 11.6%, 고등학교 2학년 14.2%였습니다. 5년 전인 2017년과 비교하면 중학교 3학년의 경우 7.1%에서 4.5%p, 고등학교 2학년은 9.9%에서 4.3%p 증가했습니다.

수학 기초학력이 낮아진 만큼 수학에 대한 아이들의 자신감과 가치, 흥미, 학습 의욕 등도 줄줄이 낮아졌습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수학이 재미까지 없으니 스스로 수포자로 여기는 학생들은 늘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국회의원과 사교육걱정이없는세상(사걱세)가 올해 1월 발표한 ‘2021학년도 전국 수포자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의 11.6%, 중학교 3학년의 22.6%, 고등학교 2학년의 32.3%가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고 응답했습니다. 모두 2021년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에 나타난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제가 초등학생이던 1990년대엔 많은 학교와 학원의 교육방식이 수학의 개념과 원리에 대한 이해보단 주입식 학습, 문제풀이에 가까웠습니다. 예컨대 곱셈을 배울 때 40곱하기 3은 4과 3을 곱하고 뒤에 0을 붙이는 식이었죠. 당시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수학’은 ‘암기’ 과목이 돼버렸고 학년이 오를수록 공부량이 늘면서 수학과 멀어졌습니다.

수포자였던 제가 ‘엄마용’ 수학문제집을 풀며 공부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사상누각이 되지 않기 위해 속도보다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아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후행학습을 하다보면 남들이 하는 선행 학습은커녕 학교 진도도 제대로 못 따라갈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 기초학력진단평가부터 단원평가, 수행평가 등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주변 엄마들은 “불안하지 않아?”라며 애를 태웠습니다. 아이가 초4였을 당시 대형 수학학원에 레벨테스트를 보러 갔다가 “중학 수학을 아직 시작 안했나”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들은 많은데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왜 많지 않을까요. 전문가들은 많은 학생이 ‘빨리빨리식 문제풀이’로 인해 수포자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걱세와 강 의원이 총 8088명의 중고등학생과 학부모·수학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75.4%, 학부모의 75.3%가 ‘학교 수학 시험이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에만 몰두하게 만든다’라고 응답했습니다. ‘고난이도의 시험문제’도 또 다른 문제로 지목됐습니다. 중·고등학생 60.5%는 “수업에서 배운 내용보다 수학 시험 문제가 과도하게 어렵다”고 했습니다.

사걱세는 “수학은 개념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공식암기 등 수박 겉핥기식의 문제 풀이 훈련만 계속하는 경우 고학년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하기 어렵다”며 “이러한 평가가 계속된다면 학생들은 수학 평가를 통해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게 될뿐만 아니라 수포자 증가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필즈상의 영예를 안은 허 교수의 인생을 살펴보면 한국 교육의 문제를 되짚게 합니다.  

초중고시절 수학성적이 보통의 영재들 만큼 뛰어나지 않았다던 그는 중3 때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려다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교사의 말에 단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시인이 되겠다며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봐 서울대 물리천문학과에 진학했지만 F학점이 수두룩해 6년간 대학을 다녀야 했다고 하고요. 국내 교육 과정에서 보면 부적응자에 가까워 보이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한국 교육 시스템을 따랐다면 천재가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 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허 교수와 관련된 언론 인터뷰들을 읽어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그중 ‘어떻게 하면 허 교수같은 자녀를 키울 수 있나’는 동아일보 질문에 대한 허 교수의 부친 허명회 고려대 명예교수의 대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허 명예교수는 “나는 절대적으로 사교육에 반대한다. 선행학습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다양성이 인간의 가치를 부여할 것인 만큼 일타강사의 명료하고 효율적인 일방통행식 강의 대신 유연하고 자유롭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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