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산다고 하면 (꺼내) 보여줄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금치나물을 해주려고 대형마트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 단에 7000원꼴인 가격에 놀라 구매를 포기하고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보통 설·추석 명절 차례상 차림 비용은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에 비해 20%가량 더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는 전통시장도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기자가 방문한 경기 지역 전통시장의 한 야채가게가 판매 중인 시금치 가격은 한 단(250g)에 1만원. 올해 최저시급 9160원보다 높은 가격인 것도 충격인데 그마저도 눈으로만 상태를 확인하고 다가설 수 없는 접근금지 상태였습니다. 비싼 가격에 사람들이 만지기만 하고 사지 않으면 신선도만 떨어져 팔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곳은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시금치를 아예 판매하지 않거나 있어도 가판대에 내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마치 장물 거래라도 하듯 “시금치 있나요?”를 직접 물어야 했고, “없다”고 하거나 심지어 가격도 알려주지 않은 채 “사야지만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는 상점도 있었습니다.
‘헉 소리’가 날 정도로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장이나 대형마트에 가도 비싼 가격에 구매를 망설이게 됩니다. 장바구니에 딱히 담은 것도 없어보이는데 지갑은 텅 비는 마법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게 요즘 현실입니다.
고물가·고금리로 대출 이자·학원비 등 생활비가 빠듯하다보니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 밥값입니다. 외식과 배달을 끊고 직접 요리하지만 시금치, 배추 등 식자재 가격이 크게 뛰어 부담입니다. 주부들은 외식·배달도 즐겼던 이전 생활과 가계부를 비교하면 소비액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읍니다.
18일 기준 농산물유통정보(atKAMIS)에 따르면 시금치 1kg 가격은 3만2520원으로 한 달 전에 비해 33.0% 올랐습니다. 애호박 가격은 1개에 2621원으로 한달 전보다 2배(52.3%)나 뛰었습니다. 오이(다다기 10개)와 파프리카(200g) 가격은 각각 1만4994원, 2282원으로 전월보다 33.0%, 64.1% 상승했습니다.
예컨대 시금치 한 단, 애호박 1개, 오이 한 봉(5개), 파프리카(200g)을 구매한다면 한 달 전만 해도 1만5000원이 채 안됐던 가격이 2만원을 훌쩍 넘깁니다. 실제 이날 시장에서 확인한 일부 품목의 금액이 농산물유통정보의 평균값 보다 비쌌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이는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주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좀 더 저렴하게 식자재나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나 ‘냉장고 파먹기’ 레시피를 공유합니다. 일반 프랜차이즈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는 대형마트의 ‘반값치킨’도 인기입니다.
주부 박하영(38)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인 치킨을 한 번 시켜 먹으려면 1마리만 해도 배달비까지 포함해 2만원을 훌쩍 넘긴다”며 “요즘 물가 생각하면 가격 면에서 대형마트의 반값치킨이 반가운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물가는 더 오를 것이란 예상이 나옵니다. 이미 지난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6.3% 올라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정부는 ‘추석 민생안정 대책’을 내놓고 20대 성수품 가격을 1년 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는 계획입니다. 20대 성수품에 20~30% 할인쿠폰과 쟁여뒀던 23만t 규모의 농축수산물을 동시에 풀어 가격 상승 압력을 완화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예년보다 빨라진 추석을 앞두고 폭염과 폭우로 추석 밥상에 많이 쓰이는 채소·과일 값이 오르면서 체감 인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농산물 가격은 가공식품과 외식 등 다른 부분의 가격도 밀어 올릴 수 있습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추석이 지나면 서서히 물가 오름세가 주춤해지고 9월, 또는 늦어도 10월에는 정점을 찍고 서서히 하락세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