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금리차 공시 도입에도 은행의 예금과 대출금리 차이가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은 첫 공시 이후 예금금리를 인상하고 대출금리는 인하하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예대금리차는 계속 확대됐다. 정치권에서는 금리인상기 서민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판단에 은행의 대출·가산 금리 산정 방식을 공개하는 금리폭리방지법(은행법 개정안) 입법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21일 은행연합회가 전날 공개한 ‘예대금리차’ 공시에 따르면 8월 국내 5대 은행 전체 예대금리차와 가계 부문 예대금리차 평균은 각각 1.45%p와 1.51%p로 나타났다. 전달 보다 각각 0.24%p와 0.14%p 확대됐다.
가계와 기업 전체 예대금리차는 △농협은행(1.78%p) △신한은행(1.39%p) △KB국민은행(1.45%p) △우리은행(1.43%p) △하나은행(1.20%p) 순이다. 지난달과 비교했을 때 농협은행(0.42%p)이 급등했고, 신한은행(0.25%p)과 KB국민은행(0.27%p), 우리은행(0.14%p), 하나은행(0.10%p) 모두 차이가 확대됐다.
예대금리차는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평균 대출금리와 예적금 등 저축성수신금리의 차이를 말한다. 그동안 은행들의 예대금리차를 두고 금리인상기 수신금리는 느리게 올리고 대출 금리는 빠르게 올리는 방식으로 과도한 이자장사를 해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이에 지난달부터 전체 은행의 예대금리차를 비교 공시하고, 공시 주기를 현행 3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했다.
주택담보대출이 포함된 가계 부문만 놓고 보면 △농협은행(1.76%p) △신한은행(1.65%p) △우리은행(1.57%p) △KB국민은행(1.43%p) △하나은행(1.12%p) 순서다. 전체 예대금리차와 달리 우리은행의 순위가 다소 상승하는 특징을 보였다. 가계 부문에서도 농협은행이 전달에 비해 가장 큰 폭(0.36%p)으로 상승했고, 여타 은행 역시 0.03~0.17%p 차이가 벌어졌다.
농협은행의 8월 예대금리차가 여타 은행보다 큰 폭으로 확대된 것은 단기성 정부정책 자금이 원인으로 꼽힌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수신 기간 6개월 미만의 정부 정책자금을 8월 대거 받아들였다. 단기성 수신 자금 성격상 수신금리가 낮아 예대금리차가 일시적으로 확대됐다”며 “가계대출 및 기업대출 금리는 모두 타행 보다 가장 낮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공시 도입을 통한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 억제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금리폭리방지법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리폭리방지법은 은행의 대출·가산 금리 산정 방식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개정안이다. 특히 야당이 민생안정 차원에서 금리폭리방지법 입법을 주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정기국회를 앞두고 선정했던 22대 과제를 7대 주요 입법과제로 압축했다. 7대 법안은 ▲가계부채대책 3법 ▲기초연금확대법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출산보육수당확대법 ▲납품단가연동제 ▲장애인국가책임제법 등 이다. 금리폭리방지법은 가계부채대책 3법 가운데 하나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전날 “정기국회 22대 민생 입법 과제 중 7개 법안을 좀 더 중점 추진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은행권과 전문가들은 금리폭리방지법에 대한 실효성은 물론 정책 방향을 두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먼저 은행권은 금리폭리방지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드러내고, 오히려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이 망가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은행 한 관계자는 “대출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하게 된다. 은행이 대출 금리를 조정해 부득이한 이익을 얻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이미 당국에서 관리감독하는 부분”이라며 “대출·가산 금리 산정 방식을 공개하는 것은 삼성에게 핸드폰 원가 공개를 강제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산정 방식 공개는 은행마다 다른 산정 방식을 획일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는 대출 채널에 따라 금리 격차가 더 커지고, 금리의 다양성을 줄이게 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키움증권 서영수 이사는 “현재 국내 대출금리 인상은 은행의 자체적인 요인이라기 보다는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며 “금리폭리방지법이 도입될 경우 은행의 신규 대출 금리 인하를 기대할 수 있지만 기존 차주의 금리가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금리 인상으로 가장 고통받는 것은 기존 차주로, 정부 예산을 통해 기존 차주들을 모두 지원하기 어렵다면 은행의 자체적인 지원을 기대해야 한다”면서 “은행이 신규 대출에서 얻은 수익으로 기존 차주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