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해도 숨어도 참변…잇단 스토킹 범죄에 엄마들 떨고 있다

거부해도 숨어도 참변…잇단 스토킹 범죄에 엄마들 떨고 있다

작년 10월~3월 스토킹 검거 5248건
피해자 80%가 여성…10명 중 6명, 면식 없는 사람에 스토킹 당해

기사승인 2022-09-22 15:59:56
19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마련된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 추모공간. 사진=임형택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14일 20대 여성 역무원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피의자 전주환(31)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 살인 혐의로 구속송치됐다. 피해자 A씨는 2019년 11월부터 3년간 300여차례에 걸쳐 전씨에게 스토킹을 당했지만 제대로 신변보호 조치를 받지 못한채 죽임을 당했다.

신당역 살인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있지만 스토킹 범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2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북 안동경찰서는 혼자 사는 이웃 여성 집 문을 두드리며 만나달라고 강요하는 등 스토킹 혐의로 50대 남성 B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B씨는 이미 지난 6월 피해자 집에 들어가려다 붙잡혀 주거침입 미수 혐의로 재판받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다 앞선 18일에는 경남 진주시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과거 자신의 국선변호인이었던 변호사를 스토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이 지난 6월 발간한 ‘2021 사회적 약자 보호 치안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올해 3월까지 스토킹 범죄 발생 건수는 5707건, 검거 건수는 5248건에 달한다.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80.8%)이었고, 피의자의 81.3%가 남성이었다. 연인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한 경우가 20.9%로 가장 많았고 지인(11.4%) 이웃(4.1%) 가족(3.4%) 직장 내(1%) 순이었다. 피해자 10명 중 6명은 면식이 없는 관계의 인물에게 스토킹을 당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스토킹 사법처리건수. 경찰청 ‘2021 사회적 약자 보호 치안백서’ 

반복되는 스토킹 범죄에 부모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특히 딸을 둔 부모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서울 양천구에서 두 딸을 키우는 박은영(39)씨는 “계속 데이트폭력, 스토킹 범죄 등이 일어나는 데도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신변 보호에 여전히 허점이 많은지 이해가 안 된다”며 “학교에서 생존수영이 아니라 호신술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에 거주하는 워킹맘 김은정(40)씨는 “딸은 둔 부모에 입장에서 신당역 살인 사건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스토킹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데 계속 딸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죽임을 당하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세 딸을 키우는 이지선(38)씨는 “친구가 전 남자친구에게 스토킹을 일년 넘게 당하면서 많이 고생했다. 거부해도 집, 직장으로 쫓아오고 집요하게 연락해 친구가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스토킹 범죄는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제든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 나중에 우리 아이들도 사회에 나가 이런 일을 겪게 되지 않을지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이 느슨하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한 학부모는 “딸 가진 부모로서 너무 화가 나고 무섭다”며 “법이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들도 “스토킹도 엄중한 범죄인데 다들 구애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 “대체 몇 명이나 죽어야 법이 바뀌고 정착되려는지” “스토커에 의한 살인이 한두 번도 아닌데 피해자가 죽어야만 구속되는게 현실이냐” 등 비판이 쏟아졌다.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31)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철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실제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뒤 올해 8월까지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3건(377건) 중 1건(123건, 32.6%) 꼴로 법원에서 기각했다. 

스토킹 처벌 경고를 받고도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의 집에 침입해 폭력을 행사한 20대 남성도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에서 21일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여전히 낮은 처벌 수위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스토킹 처벌법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가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나온 스토킹 범죄 관련 1심 판결문 159건(비공개 23건 제외) 판례들을 보면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징역 1년 이하나 벌금형,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전날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 직원을 스토킹한 40대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20일 입장문을 통해 “현행 제도는 구속, 불구속이라는 일도양단식 결정만 가능해 구체적 사안마다 적절한 결론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구속영장 단계에 조건부 석방 제도를 도입해 일정 조건으로 구속을 대체할 수 있게 함으로써 무죄추정·불구속 수사 원칙과 피해자 보호 사이에 조화를 이루게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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