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차가 잦은 경기도 버스 운행에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열악한 노동환경을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2일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시내버스 관련 민원은 7154건이다. 이 중 무정차는 2033건으로 42%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무정차 민원은 9024건이다. 같은 시기, 서울시 민원의 약 2.4배다. 서울시에서는 지난해 3644건의 무정차 및 승·하차 전 출발 민원이 접수됐다. 경기도 시내버스는 1만806대, 서울시 시내버스는 마을버스 포함 9044대다.
경기도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에도 “버스가 정류장에서 멈출 생각을 안 하고 곧장 달리던데 이게 택시였냐”, “같은 버스 무정차 신고만 두 번째다. 정차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1차선으로 가신다” 등의 민원이 수백 건 게재됐다.
실제로는 어떨까. 지난 19일 오후 경기 김포 장기동의 한 버스 정류장. 80대 여성은 같은 버스를 3대째 놓쳤다. 다리가 아파 정류장 앞에서 서서 대기하지 못한 탓이다. 정류장과 도로의 거리는 4m 정도였다. 버스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다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여성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여성은 “30분 넘게 기다렸지만 버스를 탈 수 없었다. 손을 흔들어도 멈추지 않았다”며 느린 걸음으로 택시에 올랐다. 같은 날, 기자가 탑승한 버스는 10개의 정류장 중 8개를 무정차 했다. 이 중 2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지난 21일 방문한 경기 고양과 파주도 사정은 비슷했다. 버스를 타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시가 없자 버스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정류장을 지나쳤다.
도민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파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권모씨는 “도심은 하차 승객이 있어 무정차가 덜하지만 파주 적성면처럼 사람 없는 동네 정류장에서는 손을 들어도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경기 수원에 거주하는 김모(32·여)씨는 “타야 할 버스가 있으면 무조건 손을 흔들어 의사 표시한다”며 “뒤늦게 손을 들었다고 화를 내는 기사님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26조에 따르면 운수 종사자는 승하차할 여객이 있는데도 정차하지 않고 정류소를 지나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기준은 모호하다. ‘승하차할 여객’이라는 단서가 붙기에 모든 정류장에 정차할 의무는 없다. 서울시 버스회사평가 매뉴얼에서는 정류장 인근을 시속 20㎞로 서행한 경우 정차로 인정하지만, 경기도는 기준이 따로 없다.
버스 노동자들은 무정차 논란이 경기 버스 전반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연계돼 있다고 꼬집었다. 주어진 버스 운행 시간이 너무 적어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도로 상황, 승하차 시간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고양과 파주를 오가는 92번 버스의 노선을 살펴보자. 경기도버스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파주 식현리 정거장에서 진안노인요양원 정거장까지 6분 동안 주파해야 한다. 길이는 약 4㎞, 거쳐야 할 정거장은 13곳이다. 해당 구간은 자동차로 정차 없이 달려도 5분이 소요된다. 이로 인해 버스는 속도를 내면서 달릴 수밖에 없고, 정류장에 일일이 멈추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김수진 경기지역자동차노동조합 경남여객 지부장은 “버스 정류장이 늘어나고 간선·이면도로 제한속도는 시속 50㎞와 30㎞로 낮아졌지만 주어진 버스 운행 시간은 이전과 똑같다”며 “버스 기사들이 과부하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에는 휴게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버스 노동자들은 도로가 막히면 배차 시간 때문에 쉬는 시간 없이 바로 투입된다”며 “경기도에서 버스 운행의 현실을 실질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경기 버스 노동자들은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다. 경기도 노선버스의 90% 이상이 속한 경기도 버스노동조합 협의회는 지난 20일 93.7%의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했다. 버스 준공영제 전면시행과 1일 2교대 전환, 서울시 수준의 임금인상 등을 촉구했다. 사측은 경기도가 구조 개선을 이뤄주지 않으면 노조 요구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시, 경기도 노선버스의 92%는 오는 30일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
경기도는 무정차를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도 관계자는 “무정차 근절을 위해 승차벨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경기 버스 정보’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승차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기사에게 알림이 뜬다”며 “무정차를 앱에서 바로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비해놨다”고 했다. 이어 “도심인 서울과 달리 경기도는 도농복합지역”이라며 “(버스 무정차 관련) 도 차원의 일괄적인 규정보다는 시·군에서 상황에 맞게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버스 노동환경과 파업 관련해서는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