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통신 47] “키아노” “코크”
피아노와 포크가 그려진 단어카드를 들고 5살 딸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아이 앞에서 “포오~크으”라고 입 모양을 크게 움직이며 다시 따라 해보라고 하자 아이는 늘 자기가 발음하던 데로 “코크”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당황하는 모습에 학습지 교사는 “괜찮다”고 위로했습니다. 요즘 또래 아이 상당수가 이렇게 잘못 발음하고 있지만 교정이 가능하다면서 말이죠.
2018년 겨울에 태어난 딸아이는 생후 24개월이 갓 지나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코로나19가 발발하면서 집 밖을 나설 땐 마스크를 쓰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됐습니다.
아이는 언어를 배울 때 말하는 상대와 눈을 맞추고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신중히 살핍니다. 동시에 귀로 들으며 단어를 습득하죠. 하지만 언어 발달이 한창 진행되는 시기에 코로나 베이비들은 사람들의 입이 마스크로 가려지면서 입술을 보지 못하고 들리는 소리에 의존해 단어를 배우게 된 셈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아동의 언어 발달이 지연되고 있다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부모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평일 하루 중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상대인 어린이집·유치원 교사의 입모양이 마스크 속에 숨겨져 있으니 어떻게 정확한 발음을 배울 수 있을까요.
코로나19가 아이들의 언어와 인지 발달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이미 여러 조사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서울시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최근 어린이집에 다니는 0~5세 영유아 4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지발달에서 25%, 언어발달에서 35%가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남시가 지난 3월부터 생후 42개월 미만 영유아 800명의 발달 상태를 조사한 결과, 언어 기능에서 조사 대상 중 19%가 경계 또는 발달 지연으로 조사됐고요. 운동과 적응행동 역시 11%가 추후 관찰 또는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5월 서울·경기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장·교사의 74.9%가 마스크 사용으로 인한 언어 노출 및 발달 기회가 줄었다고 답했습니다.
실제 학부모들 사이에서 언어 발달 지연에 대한 불안감이 읽힙니다. 3세 자녀를 둔 김지연(33)씨는 “주변에 말이 늦어 언어치료센터를 다녀야 할 지 고민하는 지인들이 많다”며 “코로나 이전까진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는데 마스크 사용이 아동 발달 측면에선 확실히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5세 자녀를 둔 박영은(38)씨도 “어린이집에서 밥 먹을 때 빼곤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애들이 얼마나 대화를 하겠나”라며 “어른들도 마스크 쓰고 대화하면 옆에서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 수 없을 때가 많은데 아이들은 들리는 그대로 배우는 것”고 했습니다.
당장 실내 마스크를 벗긴 어렵습니다. 날이 쌀쌀해지면서 인플루엔자(독감)를 동반한 7차 재유행이 예측되는 만큼 정부는 실내 마스크 의무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지금 실내 마스크 의무를 해제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가정이 어린이집·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때 마스크를 착용한 채 보낼 것 입니다. 지금도 48개월(만 2세 미만) 어린이는 마스크 의무 착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지만 어린이집·유치원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 아이 대부분은 마스크를 씁니다. 정부가 지난달 26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고 착용 권고로 전환했지만 야외 놀이터만 나가봐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아이를 찾기 어렵고요.
다만 문제를 알면서도 계속 덮어둘 순 없습니다. 10명 중 2~3명의 아이들은 언어 발달에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유아기 언어 발달이 아이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특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일부 지자체는 어린이집·유치원에 ‘투명 마스크’를 보급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 원장 A씨는 “교사들에 투명 마스크를 지급해 아이들에게 교사의 입모양과 표정을 볼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선택을 한 곳도 있습니다. B가정어린이집은 코로나 유행이 시작한 이후 학부모회의를 통해 실내 마스크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B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임은수(34)씨는 “코로나보다 아동 발달 시기를 놓치는 것이 더 문제라는 인식이 컸다”며 “어린 연령의 아이들이다보니 마스크를 쓰더라도 낮잠자거나 밥먹을 때, 놀이를 할 때도 마스크를 잡아 뜯어 쓰나마나 했다”고 했습니다.
가정에서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아이의 언어 발달을 위해서는 ‘수다쟁이 엄마 아빠’가 되라는 말처럼 미디어 노출을 줄이고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합니다. 학습지 교사 C씨는 “부모가 마스크를 벗은 상태에서 아이에게 발음이 다소 부정확한 단어를 자연스럽게 자주 들려주면 아이들은 금세 익힌다”고 조언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