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하며 살아왔지만” 중년 한부모의 노후는  

“고군분투하며 살아왔지만” 중년 한부모의 노후는  

기사승인 2022-11-12 18:45:51
12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중년 한부모 미래 설계 정책 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이소연 기자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다들 직장 근처로 발령받아 나갔어요. 노후 자금 없이 1인 가구가 됐는데 임대주택에서는 나가야 한대요. 몸도 아프고 친구도 없고 참 걱정이에요”

아이를 키워내고 중년이 된 한부모. 불안한 노후를 마주한 이들의 미래를 설계하고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다.
 
12일 오후 3시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서울한부모회 주최로 ‘중년 한부모들의 미래 설계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자녀를 자립시킨 후 중년에 접어든 한부모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중년 한부모를 조명했다. 중년 한부모는 미성년 자녀 양육을 마친 한부모를 뜻한다. 법적으로 한부모는 만 18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을 의미한다. 자녀가 성인이 된 경우, 주거·경제 지원 등 한부모 혜택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이영호 서울특별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장은 축사를 통해 “한부모는 홀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길다. 중년 한부모의 생활 설계는 다른 중년에 비해 더욱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전영순 경기한부모회 대표도 “앞만 보며 살아왔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드는 한부모들이 많을 것”이라며 “열심히 아이만 키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노인이 되어 있고, 노인으로 살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토론회를 통해 중년 한부모를 위한 정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중년 한부모 정책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오진방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사무국장은 지난 2014년부터 언론에 보도된 한부모 가정 사망 사건을 언급했다. 2014년 서울 송파세모녀 사건과 2018년 충북 증평 모녀 사망 사건, 같은 해 제주 모녀 사망 사건, 2019년 북한 이주모자 사망 사건, 지난해 8월 경기 수원 세모녀 사망 사건 등이다. 오 사무국장은 “한부모 입장에서는 외면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 한부모도 사각지대인데 한부모에서 벗어난 가구는 낭떠러지에 있다”며 “자녀가 성인기에 이르면 많은 한부모가 주거 불안을 호소한다. 마땅한 정책이 없다는 것이 매우 큰 문제”라고 말했다. 

12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중년 한부모 미래 설계 정책 토론회가 진행됐다. 서울한부모회  
노후대책이 막막한 중년 한부모 당사자들의 발언도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심명옥(여)씨는 15년간 아들 둘을 홀로 키웠다. 첫째 아들의 취업 후 위기가 닥쳤다. 저소득 한부모 기준에서 탈락한 것이다. 심씨는 “삶이 불안해 미래에 투자하기보다는 빚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며 “저는 여전히 똑같은 한부모인데 국가에서는 한부모가 아니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녀는 남편이 아니다. 자식에게 ‘네가 돈을 벌어 동생의 교육을 책임지고 우리 집 생활비를 채워 넣어야 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고 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으로 활동하는 유미숙(여)씨도 20여년간 자녀를 홀로 키워왔다. 20곳 이상의 직장을 전전하며 1년 이상 쉬어본 일이 없다.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도 닥쳤다. 살고 있는 임대 주택에서 4년 후 퇴거해야 한다. 자녀에게 소득이 생기면서 가구 소득이 388만원을 넘겼기 때문이다. 유씨는 “저도 자녀도 모두 최저임금 수준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며 “주거 절벽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자녀일 경우 더욱 힘들다. 허경희(여)씨는 방 두 칸 거실 없는 집에서 아들 4명을 홀로 키웠다. 최근 허씨는 더 넓은 주거 환경을 위해 SH국민임대아파트를 신청했다. 그러나 첫째 아들이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신청 기준에서 탈락했다. 허씨는 “아이들이 집이 넓어진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억울한 마음에 주거복지센터와 구청을 찾았으나 방법이 없다고 했다”며 “아들들이 모두 자라면 지금 받는 월급으로 어디에서 살게 될지 모르겠다. 다시 기초생활수급자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가족생활 주기별 한부모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자녀의 연령에 맞춘 지원 설계와 주거·일자리 방안 등이 설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영미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인구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한부모는 아이가 18세 미만인 40대 후반까지는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65세 이상이 되면 보건복지부에서 노인 지원을 받는다”면서 “40대 후반부터 65세 이상까지 15~17년 정도 중년 한부모에 대한 정책 지원이 없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가족친화제도 등 한부모 근로 여건 조성 △고용안정성 및 일자리 질 확보 △긴급·일시 돌봄 체계 등 자녀돌봄 지원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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