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해독하고 쓰는 능력인 ‘문해력’ 문제가 최근 온라인상에서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지난 8월11일 EBS ‘당신의 문해력 플러스’를 통해 일부 학부모가 가정통신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장면이 온라인에서 회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이 방송을 통해 공개한 가정통신문에는 ‘교과서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 반납’이라는 내용이 적혔습니다. 교사에 따르면 일부 학부모는 ‘사서교사’를, 구입한다는 의미의 ‘사다’로 잘못 이해했다고 합니다.
준비물이 가정통신문에 적혀있음에도 수업과 관계없는 물건을 챙겨오거나, 온라인 수업 참여 방법을 글로 적은 가정통신문을 배포했음에도 “줄글로 돼 있는 설명은 읽지 않으니 동영상으로 촬영해달라”는 한 학부모의 요청이 있었다는 사례도 담겼고요.
학부모들의 주로 활동하는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는 들썩였습니다. 가정통신문을 제대로 읽지 않는 것에 대한 지적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문해력 부족이 마치 “부모의 문제”라는 식의 주장은 억울하다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일부 학부모들의 사례를 근거로 모든 학부모의 국어 문해력이 저하됐다는 식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일부 학부모들은 가정통신문을 제대로 챙기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클래스팅, 하이클래스, 밴드 등 알림장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하루에 수 건의 알림이 올라와 자칫 일부 내용을 놓치거나 업무 중간 대충 읽고 넘어가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이죠.
경기도 산본에 사는 주부 배모씨는 “앱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면서 대충 읽는 경향이 높아진 것 같긴 하다”면서 “(아이 학교의 경우) 파일 형식으로 가정통신문 앱에 올라와 특정 안내문은 검색하기 어렵다. 다시 확인이 어려운 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종이 안내문과 달리 앱을 통해 업로드되는 교내 가정통신문은 교육청 안내문, 광고글 등에 묻혀 지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세 아이를 둔 기자도 매일 학교들로부터 가정통신문을 받는데요. 매일 휴대전화에서 수 건의 가정통신문 알림이 울리는데 가장 부모가 집중하는 건 담임 교사가 다음 수업 준비를 위해 올리는 1~2건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학교 외부의 교육청이나 단체 등에서 학교 측에 가정통신문으로 전달을 요청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종종 1~2페이지 공문 형식의 긴 내용의 안내문이 오기도 하는데 글을 읽고 쓰는 일을 하는 기자도 간혹 문맥이 이해되지 않아 반복해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 읽는 사람을 위해서인 글이라는 생각보단 행정편의 위주로 정해진 양식에 맞춰진 알림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요.
가정통신문의 내용과 설명이 불충분한 경우도 있습니다. 한 누리꾼은 최근 학교로부터 받은 ‘2022년 IB 프로그램 학부모 설명회’ 가정통신문을 공유하면서 제시된 방법대로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는데 설명이 불충분해 내용을 찾기 힘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정통신문이 보호자와 저학년 학생들에게도 쉽게 전달될 수 있는 쉬운 용어가 아닌 한자어투성이 안내문도 늘 아쉽습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행한 ‘2022년 11월 온라인 문화예술행사 개최 일정 변경 알림’을 볼까요. 안내문은 목적으로 “흥미롭고 공감있는 공연 관람으로 지성과 감성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적 소양(素養)을 함양(涵養)”이라고 적었습니다.
흥미롭고 공감있는 공연 관람으로 문화적 지식이나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내용을 이렇게 어렵게 쓸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기사를 작성할 때 선배들로부터 최대한 외래어와 한자어 등 사용을 자제하고 어린 독자도 이해하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배웠던 때가 떠오르더군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소위 있어 보이려고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을 옛날 문체로 쓰는 안내문이 여전히 있다”며 “보통 가정통신문은 과거 양식에 내용만 바꿔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안내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 때의 피해는 보호자도, 교사도 아닌 학생의 몫입니다. 때문에 학교는 가정통신문을 남발하지 않고 꼭 필요한 내용만 전달하며, 보호자와 학생은 가정통신문을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EBS 방송 역시 “교사들의 공통적인 부분은 학부모들이 내용을 이해를 못한다기보다는 부주의하게 읽어서 놓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워킹맘이자 기자 선배인 임모씨는 “아이가 하나인 나 역시 가정통신문을 남편과 크로스체크를 하는데도 깜빡하는 경우가 있다”며 “학부모들이 교사에 소위 ‘없어보이지 않기 위해’ 기자보다 오탈자를 더 신경쓴다는 말이 있는데 문해력 문제보단 안 읽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라고 추측했습니다.
초2 자녀를 둔 박모씨는 최근 소풍과 관련한 교내 가정통신문을 받았습니다. 박씨에 따르면 소풍 장소와 ‘도시락 지참’이라는 글이 안내문에 적혀있었지만 일부 학부모는 반 단톡방에 소풍 장소를 묻거나 도시락을 싸야 하는지를 여부를 물었다고 합니다. 박씨는 “문해력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안 읽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