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야권의 국정조사 요구가 거센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힘이 국정조사의 시기상조론을 넘어 결사반대 기조로 돌변했다. 참사에 대한 원인 규명을 바라는 국민적 요구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태원 참사에 머물러 있는 국면을 전환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1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 후 당내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고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해서 어떠한 조치를 해서라도 밝혀내겠단 당초 국민의힘 기조와 달리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는 결국 정쟁으로 번질 뿐이라면서 국정조사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당초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정조사에는 공감하나 시기상의 이유를 들면서 늦추자는 의견을 견지해왔다.
주 원내대표의 발언이 약했다고 판단한 것인지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 의원은 그간의 침묵을 깨고 지난 10일 비공개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를 저격했다.
장 의원은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원내지도부를 한 번 더 준 건 정기국회를 잘 돌파하라는 것인데 지금 드러난 걸 보면 좀 걱정된다”면서 날카로운 말을 쏟아냈다. 전면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장 의원의 이례적 행보로 ‘윤심’이 전달된 게 아니냐는 세간의 해석도 있다.
‘윤핵관’ 장 의원 발언 후 국민의힘 당내 분위기는 급변했다. 국정조사에 동의하나 시기상조라는 다소 소극적인 주 원내대표 발언 수위를 넘어 국정조사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강제수사가 가능한 경찰 조사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분위기 변화는 지방의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용산의 지방의회인 용산구의회는 여야 할 것 없이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뤘고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진상규명 특위 구성에 합의했다. 10일 운영위에서는 만장일치로 특위 구성에 찬성했지만 막상 본회의 표결에서는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들이 전격 반대하면서 부결됐다.
용산구의회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들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이태원 참사 후 구청 직원들의 업무 강도가 너무 센 만큼 수사 결과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면서 반대 이유를 전했다.
각 당의 메시지를 담아 전하는 국회의사당 앞 현수막 문구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지난 10일까지만 하더라도 여야 모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렸다. 하지만 11일 국민의힘의 현수막은 수능을 앞둔 수험생을 응원하는 문구로 바꿔 걸렸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슈가 빠르게 전환되길 바라는 듯한 모습으로도 비춰질 수 있다.
정치전문가들도 갑작스러운 국민의힘 태도 변화는 ‘윤심’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점쳤다. 이태원 참사가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 있는 만큼 정치 이슈를 빠르게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내재됐을 거란 주장이다.
최요한 평론가는 16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10·29 참사가 아니더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슈를 가져가려고 하는 게 정치의 기본적인 속성”이라며 “정부는 참사가 국민적인 분노로 전환되지 않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빠르게 이슈 전환을 통해 덮어버리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참사를 미리 막지 못했으면 수습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국정조사마저도 반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국민의힘에서도 소위 윤핵관과 대통령실 인사들에게 힘이 몰리다보니 당내에서도 민심을 알고는 있지만 다른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태도 돌변은 결국 정치적 전략이라는 분석도 눈에 띈다. 경기도 대변인을 지낸 정치평론가 김홍국 교수는 같은 날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갑작스러운 태도 돌변은 결국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목적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의힘의 태도는 정략적 계산에 따른 직무유기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아직 참사의 원인 규명과 누구의 책임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당연히 책임이 있는 용산구의회 차원의 특위 구성뿐 아니라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도 필요하다”며 “용산구의회 운영위에서 만장일치로 합의된 내용을 본회의에서 태도 돌변해 부결시켰다는 점을 보면 누가 보더라도 석연치 않은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국민의힘 의원들에도 쓴소리를 전했다. 그는 “시대가 변하고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해서 국민이 필요하다고 하는 얘기를 못 한다면 그게 과연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국민이 다 지켜보고 있다”고 부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