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수준 달라졌는데...‘세월호 참사’ 기억에 집착하는 정치권

국민 수준 달라졌는데...‘세월호 참사’ 기억에 집착하는 정치권

이태원 참사 유족, 尹에 ‘진심 담긴 사과’ 요구
추모식서 사과...대국민 담화 형식 없어
정치 전문가들 “유족들이 ‘그만’ 할 때까지 사과해야”
야권 매체 ‘일방적 명단 공개’에 정쟁 요소 부각...야권도 책임 있어

기사승인 2022-11-24 06:00:34
21일 이태원 참사 애도거리.   사진=임형택 기자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관점이 국민적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은 이태원 참사를 세월호 참사 당시와 비슷하게 바라보면서 진정성 있는 사과나 책임 추궁에 인색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 국민 다수가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부정적인데도 일부 야권 성향 매체에서 희생자들의 명단을 일방적으로 공개해 정쟁적 요소로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24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심 어린 대통령 사과 등 6가지 요구사항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조계종 위령법회 등에 참석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해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유족들은 이를 진정성이 있는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종교의 추모 행사를 통해 사과의 뜻을 여러 차례 전하긴 했으나 대국민 담화 형식의 사과는 없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에 나서고 난 뒤 정부의 책임론이 더욱 불거진 것을 의식해 최대한 사과를 늦추거나 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발생 14일 만인 2014년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첫 사과의 말을 전했고, 여론이 들끓자 그로부터 2주 후인 5월 1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재차 사과했다. 이후 세월호 참사 후속 조치에 대한 논란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계속되면서 결국 정권 퇴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를 세월호 참사 당시와 동일 선상에 놓고 바라보는 게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두 참사 모두 국가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상황과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정서가 다르다는 것이다.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 특임교수는 23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세월호 참사 때는 선박 적재물에 대한 안전기준 위반, 구난 시 행정기관의 조치 문제 등이 얽히면서 결국 정권 퇴진까지 이어졌지만, 이태원 참사에는 행사 주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참사의 형태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번은 단원고라는 학교 중심으로 피해자들의 강한 결집력을 가질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희생자가 천차만별이라서 결국 국민의 시각을 살펴봐야 한다”며 “국민은 자식 잃은 심정을 공유하고 있는데 정부가 국가 애도기간이 끝나고 대국민 담화도 하지 않고 도망가듯 동남아 순방에 나선 것은 결국 문제”라고 지적했다.

야권도 이태원 참사를 완전무결하게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한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워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만은 않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9일 최고위 회의에서 “유족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친야권 성향 시민언론 매체 두 곳이 유족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크게 논란을 빚었다.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은 해당 매체와는 확연히 선을 그었지만, 당 대표 발언의 무게감을 고려하면 적잖은 영향을 미친 걸로 보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명단을 공개한 측의 의도를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재명 대표가 희생자 명단 공개의 필요성을 언급한 다음 명단 공개가 된 만큼 국민은 이를 오버래핑해 받아들일 수 있다”며 “결국 사람들은 명단 공개를 본질보다는 정치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과할 시점을 놓쳤지만 뒤늦게나마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필요하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차재원 교수는 “역대 정권에서 큰 사고가 나면 누군가 우선해 사표를 쓰고 대통령은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형태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은 말단만 잡아넣으려는 모습”이라며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하고, 억울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책임자 추궁이 필요하다. 늦었지만 사과는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성철 대구 가톨릭대 특임교수는 같은 날 쿠키뉴스에 “유족이 그만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유족들은 대통령이 앞서 한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발 사과를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사과하는 게 맞다”며 “사과는 자기만족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실은 사과하면 마치 잘못을 인정하고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도 보인다”며 “법적인 시각을 벗어나 대통령의 역할과 판단을 해야만 한다”고 부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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