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통신 49] 빨간 숯불 위로 밤이 담긴 스텐철망을 신나게 흔들었다. 잠깐이라도 흔들지 않으면 밤 겉만 까맣게 타버리고 속은 안 익어 먹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철망에서 밤알 하나라도 떨굴까 싶어 조심스럽게 철망을 흔들며 군밤을 만들었다. 숯검정이 묻은 밤껍질을 훌훌 벗겨내고 한 입 먹더니 ‘꿀맛’이란다. 집에선 ‘맛이 없을 것 같다’며 밤을 쳐다도 보지 않던 아이들이 맞나 싶었다.
군밤과 군고구마에 푹 빠졌던 아이들은 배가 찼는지 그제야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카만 하늘에 촘촘히 수 놓인 별들을 보고는 “이렇게 많은 별은 처음 본다” “별이 쏟아질 것 같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근 방문한 충북 충주시 긴들마을허브센터에서 만든 추억이다.
내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시골 친가와 외갓집에서 뛰놀던 것이다. 외갓집 길목에서 놀다가 동네 개라도 지나가면 외할머니댁 마당에 신발을 벗어던지고 마루 위로 뛰어올랐다.
방학마다 찾았던 시골 할머니댁 천장에 매달려 있던 메주 냄새도 아직 잊히지 않는다. 할머니댁 마당에 있던 대나무밭은 나와 친척 언니 오빠들에겐 놀이터였다. 젖소 농장에서 손으로 착유(우유 젖 짜기)를 하거나 할머니가 길가에서 따주신 이름 모를 열매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추억이 됐다.
조부모 모두가 서울에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시골은 교과서 속 세상이다. 학교와 학원으로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한적한 농촌은 휴식처이자 특별한 체험처가 될 수 있다. 실제 도시와 다른 매력에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선 농촌체험마을과 농촌유학이 인기라고 한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오랜만에 아이들과 시골체험에 나섰다. 코로나 이전 경기도 양평의 한 외갓집체험장에서 맨손으로 송어잡기를 하거나 벼 모종 심기 등을 했었는데 아이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돼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함께 추억하곤 한다.
지난 주말에는 복잡한 도심을 떠나 긴들마을로 향했다. 마을 이름처럼 긴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을 입구엔 수령 250년된 향나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 나무 바로 옆에는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었던 우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은 채 있었다. 아이들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려 물펌프에 넣고 손잡이를 아래위로 움직이니 물이 뿜어나왔다. ‘와 신기하네’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긴들마을허브센터에 도착하니 다양한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과, 새송이버섯, 팝콘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체험마을인데 ‘팝콘마을’로 유명했다. 마을 영농조합법인에서 생산하는 먹거리로 사과팝콘 우유팝콘 복숭아팝콘 버터팝콘 고추팝콘 등을 직접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은 두부와 사과팝콘, 사과피자 만들기를 했다. 사실 이런 체험활동은 수도권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충주 특산물인 사과를 직접 키우는 농민들과 대화를 하며 활동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농민과 농산물에 대한 감사함을 함께 배울 수 있다. 손두부 만들기를 체험할 때에도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평소 국이나 조림 등으로 조리되지 않은 두부를 싫어하는 우리 아이 조차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두부를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농촌체험마을 중에는 숙소 및 캠핑 시설을 운영하는 곳이 많다. 서울 등 수도권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여유를 즐기기 위한 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긴들마을허브센터도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특히 이중 100년된 한옥 고택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손병용 내포긴들영농조합 대표 부모님의 추억이 담긴 집을 활용한 숙소라고 한다. 한옥 고택의 경우 아이를 둔 가정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긴들마을허브센터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양평군 외갓집체험마을과 전라남도 곡성의 체험마을 등 각 지역마다 가족 체험활동과 도농 교류를 목적으로 농촌체험을 진행하는 곳이 많다. 지역 입장에서도 자원을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농촌과 도시민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상생발전인 것이다.
아이들도 만족했다. 긴들마을로 출발 전 게임기를 챙겨갔던 아이는 단 한번도 게임기를 쳐다보지 않았다.
“농촌은 심심할 줄 알았는데 재밌는게 너무 많아요. 또 오고 싶어요!”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