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아니면 창업, 그럼 제 꿈은요? [마지못해,상경①]

공무원 아니면 창업, 그럼 제 꿈은요? [마지못해,상경①]

기사승인 2022-12-19 06:00:06
지난 2020년 서울과 경기, 세종을 제외한 15개 광역 시·도에서 청년 인구가 순유출됐다.   사진=박효상 기자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에는 사면초가에 빠진 오디세우스 이야기가 나온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로에서 괴물 스킬라와 소용돌이 카리브디스 중 하나를 골라 맞서야 했다. 괴물은 부하를, 소용돌이는 배를 잃는 위험이 있었다. 나아가려면 선택해야 했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괴물과 싸웠고 부하 여섯을 잃었다. 그는 후회했을까, 문제에 정답은 있었을까.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이 만난 지방 청년은 모두 한 명의 오디세우스였다. 서울로 갈 수도 고향에 남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 인생.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일자리, 집, 생활비, 외로움의 고통이 따라왔다. 땅 위에서 부유하는 지방 청년들. 고향에 남은 이의 이야기는 [마지못해, 상경] 홀수 편에, 상경한 이의 목소리는 짝수 편에 담았다.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한 지방 청년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편집자주]

3분의 1은 수도권에 일자리를 잡았다. 또 다른 3분의 1은 수도권 외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나머지 3분의 1은 고향에서 일한다. 2020년 대졸자 이동경로 조사에 참여한 전북 전주 출신 중 취업자 221명을 분석한 내용이다. 전주에 머물며 일하는 사람은 70명. 약 32%다. 김바름(여·30·가명)씨도 여기 속한다. 그도 한때 상경을 꿈꿨다. 현실적으로 서울 집세·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가족이 있는 전주가 좋았다. 그래서 머무는 것을 택했다.
 
김씨는 시 산하 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한다. 대학 졸업 후 구한 5번째 일자리다. 사기업부터 공공기관까지 전주 내 사무 계약직을 전전했다. 6년 동안 일했지만 월급이 세후 200만원을 넘은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이마저도 최저임금이 올라서 가능했다. 근무 환경도 열악했다. 사기업에서 일했을 때는 연차 휴가도 받지 못했다. 김씨가 일했던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토요일에 출근하거나 하루 업무 시간이 10시간을 넘는 곳도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한 후에 당장 일할 곳을 알아봤는데 가능한 건 사무 계약직뿐이더라고요. 그나마 공공기관은 한 달 만근하면 연차를 주니까 ‘계약직을 하더라도 공공기관에서 해야 겠다’ 생각했어요” 

고용노동부 워크넷에서 전북 전주, 200만원 이상, 주 5일제, 정규직 키워드로 검색한 일자리. 워크넷 캡처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온다. 불안이 커지자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는 빈도도 늘었다. 경조사 지원금 지급, 연봉 3000만원 이상. 전주 내 한 기업에서 사무직을 뽑는 공고가 떴다. 흔치 않은 복지, 흔치 않은 연봉이었다. 1명을 뽑는데 97명이 몰렸다. 바늘구멍이다. 지난 9일 기준, 워크넷에 게재된 전주시 일자리는 1342건. 희망 임금을 월 200만원 이상으로 기재하면 562건으로 줄어든다. 주5일제 정규직을 검색조건으로 더하면 258건이 사라진다. 남은 304건은 대부분 유치원 교사,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등이다. 대학을 다시 가 자격증을 따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무원 아니면 창업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지난 6월 전북 남원 지역 청년 1008명을 대상으로 한 ‘청년사회경제실태조사’ 결과 청년 미취업자 비율은 41.9%다. 2년 이상의 장기 실업자는 전체의 33.5%에 달했다.  사진=박효상 기자
김씨는 사무직 중에서도 기획 업무를 희망한다. 행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전주 내에서는 이런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있더라도 계약직이다. 30대에 접어드니 더 불안하다. 기획 계약직의 경우, 20대를 선호한다. 조금이라도 나이가 많으면 뽑지 않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 “늘 제 앞날이 걱정돼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년에도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해요. 누군가는 ‘전주 내 공장에서 돈 벌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에요.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지방 사람도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요. 좀 더 다양한 일자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다시금 상경을 고민한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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