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통신 51]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고 새해 1월 1일이면 떡국 한 그릇을 먹고 나이를 또 한 살 먹습니다. 한국 사회에선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했던 한국식 나이가 사라집니다.
2023년 1월 1일 아침 풍경은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똑같은 떡국을 먹고도 나이를 거꾸로 먹게 됐다는 것은 크게 달라진 점입니다. 오는 6월 28일부터 한국식 나이가 폐지되고 ‘만 나이’로 법·사회적 기준이 통일되기 때문이죠.
한 살 더 먹는 게 달갑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어느 순간부턴 나이 세는 것도 잊은 채 살다보니 ‘나이가 뭣이 중헌디’ 싶지만, 만 나이 통합으로 한 살, 최대 두 살까지 줄여 말할 수 있게 됐으니 어쩐지 횡재한 기분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새해를 맞은 아이들에게 만 나이로 알려주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됐습니다.
다행히 올해 중학생이 되는 첫째와 초등 고학년이 되는 둘째는 이미 뉴스를 통해 만 나이 통일 소식을 접해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한국에서 사는데 왜 꼭 만 나이로 통일해야 하는 건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은 한 사람당 나이가 3개다. 국제 나이(만 나이), 연 나이, 한국식 나이(세는 나이) 중 세는 나이가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인다”
“한국식 나이와 만 나이를 쓰는 법적 나이가 일치 하지 않으면서 혼선과 법적 다툼이 발생했고 이런 이유 때문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만 나이로 통일하게 된 것”
이렇게 설명하자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12월31일생인 여동생(아이들의 이모)을 예로 들며 “태어나자마자 한 살, 다음 날 두 살이 되는 게 한국식 나이. 우리나라만 이렇게 나이를 계산한다”고 설명하니 그제야 아이들도 조금은 이해한 듯 “그건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올해 세는 나이로 6살이 되는 셋째는 만 나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떡국만 먹으면 6살이 돼 어린이집 형님반으로 갈 줄 알았던 셋째는 떡국을 먹고도 5살도 아닌 만 4살이란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럼 전 언제 형님이 돼요?”라며 엉엉 울기도 했고요. (‘형님반에 간다네’란 동요가 있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형님반’은 의미가 큽니다.)
참고로 어린이집·유치원은 이미 만 나이로 학급을 구분해 교육하고 있고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결정하는 것도 이미 만 나이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지금과 달라지는 점은 크게 없습니다.
비슷한 상황은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쏟아졌습니다. “아이가 형님 되는 줄 알았는데 다시 어려진다니 속상해서 울더라” “만 4세인 6세(한국 나이) 아이가 자기는 절대 4세가 아니라고 대성통곡했다” “아이 시선에선 이해가 쉽지 않을 듯” “어려지는 것에 속상해하는 모습이 귀엽긴 하지만 안쓰럽다” 등 학부모들의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만 나이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만 나이 꼭 해야 하나” “그냥 일상생활에선 지금처럼 한국 나이 쓰면 안 되나” 등의 질문도 잇따릅니다.
아예 지금까지와 같이 세는 나이로 계속 쓰겠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셋째와 동갑내기 아이를 키우는 지인은 아예 올해 달라진 나이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린 연령의 아이들에겐 TMI(너무 많은 정보)란 이유에서죠.
만 나이를 이해시키려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와 놀이터에 가니 언니 오빠로 보이는 아이들과 어린 동생들이 한 데 어울려 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안에서도 나이에 따른 서열 문화가 존재하더군요. 아이들의 대화 도중 튀어나오는 “넌 몇 살이니? 난 7살인데” “나보다 어린데 반말한다”는 말을 듣고 있으니 벌써부터 지극히 한국적 정서가 몸에 배어있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아이에게 만 나이를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겠지만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이해시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혼란스럽겠지만 만 나이 통일 방침으로 혼선이 줄고 나이를 앞세운 낡은 서열 문화가 사라지길 기대해봅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