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잇따른 사교육비 인상 소식에 학부모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한 푼이라도 더 투자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같지만 경제적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의 대학 진학률이 비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같이 부모의 배경이 학력 격차에 미치는 영향과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다.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부모의 배경이 학력 격차에 미치는 영향과 해소방안’이란 주제로 정책 토론이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학력(학업성취) 결정 요인과 부모의 경제력 관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나왔다.
대학생과 2023 수능을 치른 자녀를 둔 학부모 김은주씨는 이날 토론에서 “부모의 배경이 학력 격차에 미치는 영향은 늘 실감하면서 살아왔다”며 “부모끼리 모이면 이런 신세 한탄을 하면서 ‘우리 아이도 멋진 환경을 만들어줬을텐데’라고 푸념했던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이 해주지 않은 영역을 철저하게 세분화해 촘촘하게 가격을 매기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절절한 상황을 이용해 불경기 속에서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유년기 영어유치원을 시작으로 학교급으로 넘어가면 예체능은 물론, 대학 입시를 위한 국·영·수 등 다양한 과목을 사교육으로 선행하는 일이 적지 않다. 김씨는 “(특히 예체능의 경우) 아이가 재능이 있어서도 부모가 경제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시작부터가 불가능하다”며 “이러한 상황을 삶 속에서 경험한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기피하거나 자녀 출산을 하지 않는 것으로 선택하는 사회적 현상을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모의 경제력에 더해 지역 간 차이가 학력 격차를 벌린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교영 양주백석중학교 교사에 따르면 기초학력진단평가에서 약 600명의 학생 중 120명(25%)이 미도달로 학습지원대상이었다. 박 교사는 “학습지원대상자 수와 교육 복지 지원 대상 수가 거의 일치했다”며 “(경제)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이 학업 성취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를 보인 것”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수도권 외 지역은 강사부터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강사 공고를 기본 2~3번 내면서 어렵게 구했지만 효과는 봤다. 연초보다 연말 평가에서 학습지원대상이 3분의 1가량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부모의 배경이 학력 격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학력 격차의 원인이 ‘부모 배경으로 인한 사교육’ 때문만은 아니라는데 공감했다. 부모 배경으로 인한 학력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 역시 다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게 토론자들의 공감된 입장이다.
공교육 내실화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강남 대치동 학원업계에 몸담았던 박재원 에듀니티랩 학습과장연구소장은 “(현장에서 보면) 학습 효용성이 높은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통해 공부 소득을 충분히 얻고 사교육을 보완재로 사용한다. 반면 저조한 학습 노동을 하는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대부분 낭비하고 사교육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이어 박 소장은 “이를테면 학교에서 밥상을 차려준 것을 학생이 잘 먹으면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데 학교에서 아무도 밥을 먹지 않는다. 학교 밖으로 나가 부모가 차려준 밥상, 즉 사교육을 찾는다”며 “학생들이 학교에서 차려준 밥을 맛있게 꾸준히 먹을 수 있는 방향을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성식 서울교육대학교 교수도 “(정부의 교육 정책으로) 성취도가 높고 평등한 학교, 효과를 본 학교가 없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런 학교를 발견하고 교육이 그런 쪽으로 가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가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 교사는 “가정에서 아이가 학교는 잘 갔는지, 학교에서 공부는 하고 있는지, 부족한 학습을 어떻게 채워줄 지 교사와 상의해 나간다면 분명한 (학력) 향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장학금 확대 등 교육비 지원 현실화·수도권 이외 지역에 고교평준화 해제, 교육 데이터 일원화, 메타버스 등 에듀테크를 활용한 시스템 구축 등이 학력 격차 완화 방안으로 제시됐다.
교육부는 국가가 학생의 기초학력을 책임진다는 5개년 종합계획에 따라 올해부터 다양한 정책 추진, 효과를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최윤정 교육부 기초학력진로교육과장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기초학력보장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도구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하고 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지원을 할 것”이라며 “학습 지원만이 아니라 정서·심리 지원, 중앙 여러 부처들이 시행하고 있는 복지 정책과도 연계가 된다”고 설명했다. 학교 안 뿐만 아니라 학교 밖 지역 사회까지 연계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부모의 경제력 차이를 정부가 보완해 나가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최 과장은 “추진 과제인 유보통합(교육부·보건복지부로 나뉜 유아 교육·보육 체계 일원화)과 늘봄교육(오후 8시까지 돌봄·교육)이 이같은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뿐만 아니라 교실 수업 혁신·학교 교육력 제고·사교육 대책 등 상반기 여러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