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도 부모는 딸 영정을 지켰다

설에도 부모는 딸 영정을 지켰다

기사승인 2023-01-22 13:01:02
이태원 참사 49일째인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광장에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마련한 시민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희생자들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여느 때와 같이 즐거운 여행이었을 것이다. 4개 국어를 하는 재주 많은 딸 덕분에 힘든 것 없이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딸이 마련한 계획표를 따라 여기저기 구경하고, 관광명소에서 웃음 가득한 가족사진도 찍었을 것이다. 그랬어야 했다. 이효숙(61·여)씨 가족은 설 연휴 기간 유럽에 있어야 했다. 바람이 매섭게 부는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이 아니라. 딸 고(故) 정주희씨가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로 숨진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시린 설 명절을 보내게 됐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는 22일 오후 3시 녹사평역 광장에서 합동 차례를 지낸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14일부터 녹사평역 광장에 시민 분향소를 설치했다. 정부 합동 분향소와 달리 희생자들의 위패와 영정이 놓였다. 빨간 목도리를 두른 유가족들은 교대로 분향소를 지키며 추모객을 맞이했다.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참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참사 후 유가족의 일상은 무너졌다. 고 이민아씨의 아버지 이종관씨는 “명절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전에는 가족끼리 모여서 성묘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 먹었지만 이번에는 차례조차 지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의 가족들은 민아씨가 떠난 후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 고 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도 지난 18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를 만난 자리에서 “전과 같으면 설 연휴에 자녀와 어디를 놀러 갈지 고민했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며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밖에는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유가족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경찰 수사와 국정조사가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경찰 수사는 ‘윗선’에게 책임을 묻지 못했다. 국정조사는 정쟁과 면피성 발언으로 얼룩졌다. 고 최유진씨의 아버지 최정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은 “책임 있는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아직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면서 “몇시에 사고를 당한 건지,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는지 여전히 자녀의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했다. 유가족이 포함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도 촉구됐다. 원인을 밝혀 다시는 이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16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앞에 한 극우단체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위한 목소리가 정치색을 띤 것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했다. 분향소 옆에는 한 극우단체의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주된 내용이다. 지난달 25일 성탄절을 맞아 유가족을 위로하는 미사가 녹사평역 광장에서 열렸다. 이때 해당 단체는 바로 옆에서 분향소 철거를 촉구하고 미사를 집전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었다. 최 운영위원은 “저희의 요구가 정쟁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유가족과 연대해주셔서 많이 감사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 지자체에서도 저희와 연대해주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의 한 골목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가 몰리며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158명이 숨지고 196명이 다쳤다. 이후 참사 생존자였던 10대 학생 1명이 극단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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